등록 : 2007.09.12 18:10
수정 : 2007.09.12 18:23
사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어제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임기 일년을 채 채우지 못한 ‘불명예 퇴진’이다. 그는 사임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힘든 상황”이며 “정권을 운영하는 게 더이상 곤란하다”고 말했다. 지난 7월 말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한 뒤에도 퇴진 요구를 거부하며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드러난 국민의 판정 앞에선 더 버티기 힘들다고 자인한 셈이다.
아베 총리의 퇴진은, 그로 대표되는 일본 전후세대 정치인들의 정치력과 정치노선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9월 조각과 지난달 말 내각 개편 때 이념과 역사관이 비슷한 인사들을 중용했다. ‘끼리끼리 내각’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또래의 측근들도 많이 기용했다. 이것이 잇따른 정치자금 추문과 실언 사태로 이어지면서 자민당 위기의 원인이 됐다. 지난달 말 2기 내각 출범 뒤에도 국고 부정수령 문제로 퇴진하거나 정치자금 보고서 조작 논란에 휩싸인 각료들이 잇따랐다. 내부 쇄신 없는 명분만의 개혁이었던 셈이다.
그는 테러대책특별조처법 연장 문제를 사임의 이유로 내세웠다. 올 11월로 만료되는 이 법에 대해 미국 등은 연장을 강하게 요구해 왔지만, 야당인 민주당은 “국외 파병은 유엔 결의에 근거해야 한다”며 시종 연장에 반대해 왔다. 그런데도 아베 총리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법안 연장을 약속한 뒤, 총리직을 걸고 이를 관철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민주당 쪽이 기존의 입장에서 물러설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이로 인해 중의원을 해산하는 상황에까지 몰릴 것을 우려해 전격 사퇴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취임 뒤 교육기본법 개정,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법 제정 등 ‘전후체제로부터의 탈각’에 주력해 왔다. 지난 5월에는 자위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은 현행 평화헌법 제9조 삭제 등을 위해 헌법 개정을 촉구하는 담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역사적인 참패를 당하고 총리 사임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이런 아베 노선의 좌초를 의미한다.
아베 총리는 취임 초 한국과 중국을 방문해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으나 협애한 역사인식과 대북 강경노선을 견지함으로써 실질적인 진전을 가져오지 못했다. 일본 자민당은 후임 총리를 뽑을 때 엄정한 안팎의 시선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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