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9.13 18:50
수정 : 2007.09.13 18:50
사설
엊그제 한국교육개발원은 한 정책토론회에서 외국어고, 국제고, 과학고 등 특수목적고(이하 특목고)의 폐지를 제안했다. 외고는 특성화고로 전환하고, 과학고는 과학영재 교육기관과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부의 주요 정책 대안을 연구·개발하는 한국교육개발원의 위상을 고려하면, 이 제안은 교육부의 시안으로서 무게를 지닌다. 앞으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수정·보완한다고 하지만, 그 뼈대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교육부는 이미 지난 6일 외고 문제 등 특목고 종합대책을 10월 말 발표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특목고 문제의 진단은 합리적이었지만, 대안은 엉뚱했다. 특히 외고의 해법은 이해하기 어렵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규정된 특목고와 특성화고는 구분이 모호하다. 특목고 설립목적은 원래 전문가 양성을 위한 실업교육이었다. 여기에 수월성 혹은 영재교육을 추가해, 외고·과학고 등을 포함시켰다. 특성화고는 특정 분야의 인재양성을 목표로 한다. 실업교육을 요리·인터넷·애니메이션 등으로 세분화했을 뿐 특목고와 실질적인 차이는 별로 없다. 특목고에서 특성화고로 바꾸면, 달라지는 건 설립이 쉬워진다는 사실뿐이다.
교육개발원의 연구 결과처럼, 외국어고는 애초 기대했던 수월성 교육 효과를 거의 거두지 못했다. 사실 ‘어학 영재’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오로지 가정 배경이 좋고, 성적이 우수하고, 학구열이 높은 학생을 뽑아 얻어지는 선발 효과만 누렸을 뿐이다. 그 대신 외고는 사교육을 초·중등학교까지 팽창시켰고, 중3 교실의 붕괴 등 중등교육의 위기를 불렀으며, 새로운 학벌만 탄생시켰다. 아울러 대학입시 제도는 물론 교육 정책까지 왜곡시켰다. 대학은 특목고생을 우대하려고 입학전형에서 공교육을 흔드는 각종 편법을 동원했고, 교육 당국과 대학은 대입제도를 놓고 사사건건 충돌했다.
문제가 있으면 뿌리를 뽑아야지, 가지만 건드려선 안 된다. 설립 취지는 사라지고 부작용만 야기하고 있다면, 외국어고를 일반학교로 전환해야 한다. 10여년 동안 쌓인 인맥과 기득권, 이해관계 등을 일거에 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특성화고 전환이라는 궁리를 짜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미봉이지 해법이 아니다. 특성화고의 취지마저 왜곡시킬 뿐이다. 어려울수록 정도를 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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