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9.17 18:39
수정 : 2007.09.17 18:39
사설
제11호 태풍 ‘나리’가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를 휩쓸고 지나갔다. 제주도 상륙 당시 중심기압 960헥토파스칼의 소형이었지만 ‘나리’가 남긴 상처는 엄청났다. 제주와 전남 등에서 20명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그제 하루 제주시에만 460㎜의 비가 내리면서 제주도 전역이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1927년 기상관측 이래 제주도에 가장 많은 비가 뿌린 상황이어서 피해를 쉽게 예측하긴 힘들었다. 주민들도 “하늘에서 물을 쏟아붓는 듯했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이처럼 작은 태풍에도 제주도 전체가 쑥밭이 돼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인명 피해도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태풍의 위력이 2002년 ‘루사’나 2003년 ‘매미’ 수준이었다면 어떤 결과를 빚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소형 태풍이라고 방심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상청은 전날 오후까지도 “태풍 나리의 영향으로 최고 150㎜의 비가 내리겠다”고 예보했다. 그러나 한라산 성판악에만 556㎜가 내리는 등 대부분 지역에서 예보보다 서너 배나 많은 비가 내렸다. 주민들과 당국의 대처도 미흡했다. 별다른 준비 없이 넋놓고 있다가 순식간에 물이 허리까지 불어나자 몸만 빠져나온 경우가 태반이었다. 무분별한 복개도로 건설로 말미암은 하천 역류와 허술한 재난관리 체계도 피해를 키웠다.
더욱 주목할 것은 ‘나리’가 일반적인 태풍 발생 위치인 북위 5~20도보다 훨씬 위쪽인 북위 22도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태풍의 규모는 작았지만 위치가 가까운 만큼 나흘 만에 신속하게 상륙했고, 태풍의 위력도 상대적으로 컸던 것으로 보인다.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바닷물의 온도가 예년보다 높게 유지된 탓이라고 한다.
이런 분석이 사실이라면 태풍을 대비하는 재난관리 체계에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나리’가 발생한 북위 22도 근처에서 초대형 태풍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얘기다.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의 재난관리 체계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방심하고 있다가는 언제 다시 이번처럼 기습을 당할지 모른다. 제12호 태풍 ‘위파’가 북상하고 있다. 대책에 만전을 기울이기 바란다. 더불어 예상치 못한 피해로 고통을 겪고 있는 제주, 전남 일대 주민들에게 신속한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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