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9.19 18:05
수정 : 2007.09.19 18:05
사설
서울서부지법이 그제 신정아씨 구속영장을 기각한 데 대해, 검찰이 “사법의 무정부 상태”라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검찰은 사실상 공식 성명으로 보이는 보도자료까지 내어 법원을 비난했다. 검찰의 이런 반응은 지나칠 뿐 아니라 옳지도 않다. 구속 필요성을 인정받지 못했으면 정해진 법절차를 통해 다투면 되지, 이런 식의 여론전을 펼 일이 아니다. 게다가 검찰의 주장은 엉성하기 짝이 없다.
검찰은 보도자료에서, 이번 사건이 “국민적 의혹이 얽혀 있는 사건”이며, 법원의 영장 기각은 “국민적 여망을 무시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검찰이 말하는 ‘의혹’은 영장에 기재된 사문서 위조나 업무방해 등의 혐의가 아니라,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과 관련된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원 지적대로, 검찰은 이번 사건의 본질이랄 수 있는 이런 의혹에 대해선 영장에서 아무런 증거나 법적 주장을 내놓지 못했다. 그동안의 수사가 여기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얘기다. 영장 내용만으로 보면 기각이 당연하다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그런데도 ‘의혹’이 있으니 국민의 눈길을 의식해 구속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펴는 것은, 증거 없이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을 하라는 요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법률가가 할 주장이 아니다. 온나라를 휘몰아친 열기나 상황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온전하게 법률적 판단에 따라 결정을 내린 법원의 자세가 돋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신 구속에 대한 검찰의 전근대적 자세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신씨를 구속하지 못해 이 사건에 대한 증거 확보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법원 지적대로 영장에 기재된 신씨의 혐의는 이미 증거가 확보돼 있고, 횡령 의혹도 금융기록 등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아마 검찰은 신씨를 일단 구속한 뒤 교수 임용이나 기업들의 후원 과정에 권력의 압력이 없었는지를 본격적으로 확인하려는 의도였을 게다. 이런 식으로 실제 겨누는 사건의 본질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혐의로 피의자를 구속해 시간을 번 뒤 본격조사를 벌이는, 이른바 ‘별건구속’은 검찰의 오랜 악습이다. 이는 자백 강요와 수사 편의를 위해 구속 제도를 악용하는 것이며, 법관의 사전심사 등 영장주의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어떤 식으로든 제한이 가해져야 하고, 종국적으론 없어져야 한다. 불구속 수사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형사법의 대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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