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9.19 18:11
수정 : 2007.09.19 18:12
사설
미국 예일대학이 잉카문명의 유적지 마추픽추 유물 4천여점을 페루에 반환하기로 했다고 한다. 1911년 재발견 당시 미국 고고학자 하이럼 빙험이 미국으로 반출한 것들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마추픽추는 이제 성채 유적과 함께 유물도 갖추게 된 셈이다. 예일대의 이번 결정은 약탈 혹은 도난 문화재의 반환을 놓고 날로 확대되는 약탈국과 피약탈국 사이의 갈등 해결에 좋은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예일대와 페루 정부 사이에 합의된 반환 형식은 눈여겨 볼 만하다. 양쪽은 마추픽추 인근에 유물을 전시하고 연구할 박물관과 연구센터를 짓기로 했으며, 반환에 앞서 공동으로 세계 순회 전시를 하기로 했다. 세계인의 자산으로서 문화재의 의미를 되새기고, 반환하는 쪽의 체면과 명분을 최대한 배려한 것이다. 지난해 일본 도쿄대는, 일제 때 총독부가 반출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47책을 고문서 기증 형식으로 서울대에 반환했다. 그만큼 체면과 명분은 중요하다.
예일대의 결정이 있기까지 페루 정부의 노력도 주목할 만하다. 페루는 그동안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예일대를 추궁했다. 자국법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민·형사상의 압박도 행사했다. 사실 정부의 이런 노력 없이 문화재 반환은 이뤄지기 어렵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폴 게티 미술관이 최근 아프로디테 조각상 등 고미술품 40점을 반환한 것도 이탈리아 정부에서 20년이나 계속한 압박 덕분이었다. 이탈리아는 이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를 장물거래 혐의로 기소하기도 했다.
이에 견줘, 우리 정부는 한심하다. 강화도 외규장각 도서 297책을 약탈한 프랑스는 물론, 일제 때 무수하게 많은 문화재를 반출한 일본에 대해, 그저 눈치만 살핀다. 프랑스로부터는 고속전철 차량을 도입한 대가로 겨우 1책을, 그것도 빌려왔을 뿐이다. 일본 도쿄·교토 국립대학이나 궁내청 수장고에 쌓여 있다는 우리 문화재 수만 점에 대해선 실태 파악도 안 돼 있다. 도쿄대의 왕조실록 반환은 순전히 민간 차원의 노력 결과였다. 일본 궁내청이 소장하고 있다는 조선 왕실의궤 72권 역시 민간 단체가 소송을 포함해 반환운동을 하고 있다. 내년 우리나라에선 유네스코 불법문화재 반환촉진 정부간 위원회 회의가 열린다. 정부는 주최국으로서 이점을 최대한 살리겠다고 하지만, 이대로라면 체면치레도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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