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0.01 18:50
수정 : 2007.10.01 18:50
사설
남북 관계는 2000년 정상회담 이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경협과 교류, 인도적 사업 등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발전해 왔다. 개성공단 사업은 본궤도에 올랐고, 매일 수천명의 남쪽 사람이 북쪽에 머문다. 지난 5월엔 서울과 개성을 연결하는 남북열차 시험운행이 이뤄졌다. 그럼에도 지금 남북 관계 수준은 한민족의 기대는 물론이고 급변하는 주변 정세를 따라잡기에도 미흡하다.
이런 때에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이 오늘부터 사흘 동안 평양에서 열린다. 1차 정상회담 이후 7년여 만이다. 역사적 의미도 크려니와 두 정상이 풀어야 할 과제 또한 막중하다. 넓고 긴 안목을 갖고 남북 관계의 새 틀을 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정착을 가장 우선적인 의제로 다루겠다고 밝힌 것은 타당하다. 평화가 확립되지 않으면 다른 모든 관계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 회담에서 논의해야 할 평화는 어떤 상황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하고 항구적인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한반도 평화체제’가 뜻하는 바다. 평화체제를 만들 때까지 남북이 함께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평화선언’ 채택과 더불어, 서해·비무장지대의 긴장완화와 군사적 신뢰구축 방안, 군사 현안과 군축 문제 등을 다룰 고위급 회담의 정례화 등을 이번 회담에서 이뤄내야 한다. 핵문제를 완전하게 풀겠다는 북쪽의 의지 표명이 있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경협 수준도 한 차원 높아져야 한다. 남북이 함께 해주·남포·신의주·원산 등에 새로운 경제특구를 개발하는 것은 ‘한반도 경제공동체’ 비전을 구체화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경협 강화가 남북 두루 이익이 된다는 단순 논리를 넘어 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한 일정표를 채워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개성공단 등 기존 경협 사업이 순조롭게 발전하도록 여건을 개선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상회담 및 총리급 회담의 정례화, 남북 상주 기구 설치 등 통일 지향의 논의 틀을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산가족 상봉과 재결합,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등에 대해서도 이전과는 다른 접근을 할 때가 됐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냉전 종식 이후 최대 격변기에 있다.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가 대북 태도를 바꾸면서 6자 회담이 급진전되고 있고, 미국은 이를 바탕으로 대북 관계 정상화를 비롯해 동북아 안보질서의 근본적 재편을 꾀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동북아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고자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으며, 한동안 침체기에 빠졌던 러시아 역시 최근 지역 현안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세기 전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쟁투가 연상되는 상황이다. 이런 때에 남북이 함께 중심을 잡는 것은 한반도의 안정과 발전뿐만 아니라 순조로운 지역 질서 재편에도 필수적이다.
따라서 두 정상은 바람직한 한반도·동북아 질서에 대한 전망을 갖고 회담에 임해야 한다. ‘같은 점을 찾고 다른 점은 접어두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태도를 넘어서서 공통의 전망을 세우고 새 틀을 만드는 적극적 자세가 절실하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은 이번 회담을 통해 북한이 국제사회의 믿을 만한 동반자임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할 것이다. 역사는 흐르는 물과 같다. 두 정상은 한민족의 융성과 통일의 밑거름이 되도록 역사의 물꼬를 트는 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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