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0.08 18:14
수정 : 2007.10.08 19:43
사설
중국 베이징 한국문화원의 한국어 강좌에는 정원 1천명에 보통 2천여명의 현지인 신청자가 몰린다고 한다. 몽골에선 더 심하고, 베트남·방글라데시·타이 등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쪽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함께 정착시킨 우리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진 탓이다.
이렇게 국외에서의 한글 수요는 팽창하지만, 보급 체계와 규모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한글 국외교육 기관을 자처하는 정부 기관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외교통상부의 국제교류재단 재외동포재단 국제교류협력단, 문화부의 한국어세계화재단, 한국문화원, 교육부의 국제교육진흥원, 한국교육원 등이 그것이다. 기관은 다양하지만 하는 실적은 미미하다. 재외동포 교육을 담당하는 한국교육원에서 매년 배출하는 한글강좌 수료생은 100~200명 수준이다. 36곳의 교육원의 소재지도 대개 미국 유럽 일본 등이다. 정작 필요한 동남아 등에는 별로 없다. 공무원 자리보전용이라는 눈총은 여기에서 나온다.
올해 초 국립국어원이 세종학당 개설 계획을 발표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다. 매년 20곳 안팎씩 2011년까지 100곳을 동남아 중앙아시아 등지에 개설해 저비용으로 현지 외국인 실수요자에게 한글과 한국어를 보급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기관처럼 땅 사고 집을 지은 뒤 수강생을 모아 교육을 하는 게 아니라, 현지 대학과 손잡고 한국문화와 한국어 강좌를 제공하는 형식이다. 대안으로 호평 받을 만했다.
그런데 내년 정부 예산안에서 세종학당 신설 예산이 삭감됐다고 한다. 애초 44억여원을 신청했는데, 기존의 18개 학당 유지·관리에 필요한 예산 18억원만 남겨놓은 것이다. 성과를 평가한 뒤 신설 예산 반영 여부를 결정하자고 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다른 기관에 대한 평가를 선행하는 게 옳았다. 문제투성이인 기존의 기관은 놔두고, 대안 기관만 발을 묶는 건 옳지 않다.
중국과 일본은 자국의 언어를 세계에 보급하느라 무진 애를 쓰고 있다. 특히 중국은 지난 2년 동안 공자학원 125곳을 세웠고, 2010년까지 500곳으로 늘린다고 한다. 문화적 친밀도를 높이려는 노력이다. 이제 정부는 허명뿐인 기관들을 재정비해, 통일된 한글·한국문화 교육 지원기관을 세워야 한다. 프랑스의 알리앙스 프랑세즈, 영국의 브리티시카운슬처럼 앞선 제도는 왜 부득불 배우려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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