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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06 19:31 수정 : 2005.04.06 19:31

오늘 다시 ‘신문의 날’을 맞았다. 그러나 감흥은 어디에도 없다. 신문을 바라보는 독자들의 반응은 차갑다. 한때는 시대의 등불로 자타가 인정하기도 했다. 이를 떠올리면 감회가 씁쓸할 따름이다. 신문이 시대로부터 버림받은 까닭이 자업자득임을 통감한다.

한국신문협회가 신문의 날을 맞아 내세운 구호가 있다. “독자 앞엔 등불처럼, 세상 앞엔 거울처럼!” 구호는 위기의 뿌리와 해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너무나 당연한 구호에서 위선의 그림자를 본다. ‘그럴듯한 말’을 선택하는 데 신문의 능력은 뛰어난 터다. 그 말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데 서슴지 않았던 게 또한 신문이었다. 역사의 구비구비에서 신문은 시대를 배반해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율배반의 논리는 혼란을 추스르기보다는 부추길 따름이었다. 그 위선의 논리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기도 했다.

그 모순의 출발점을 권력화에서 찾는다. 언론을 흔히 ‘제4부’라고 일컫는다. 일탈할 수밖에 없는 권력을 감시하는 권능을 부여받은 터다. 그러나 그 초권력적 지위는 일찍이 또다른 탈선을 낳았다. 정치권력과의 오랜 밀월이 남긴 역사적 상처는 아직 깊다. 이는 자기 절제가 결여된 권력의 속성이기도 하다. 정치적 민주화의 진전에도 신문의 오만과 위선은 끝나지 않았다. 자본권력 앞에서 무력하기만 하다. ‘경제’의 파고 앞에서 한낱 가랑잎이다. 능률·생산성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물결 앞에 고개 숙인다. 시대의 모순을 다잡을 능력과 책무를 포기한 듯한 조짐이 곳곳에 눈에 띈다.

그러나 우리는 신문의 잠재력을 믿는다. ‘종이신문’은 디지털시대의 혼돈을 밝힐 마지막 등불이라고 확신한다. ‘사유하는 동물’의 특성을 지닌 거의 유일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겸허한 반성과 뼈를 깎는 노력으로, 등돌린 독자들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머잖아 새 얼굴을 선보일 <한겨레>의 각오이자 다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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