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0.21 18:15
수정 : 2007.10.21 18:15
사설
정부가 이라크 주둔 자이툰부대의 파병을 1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지난주 청와대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결정돼 이번주에 국회에 보고된다고 한다. 지난해 말 정부는 올해 말까지 자이툰부대를 철군하겠다고 국회에 약속했다. 자이툰부대 임무종결 계획서도 지난 6월까지 국회에 제출하기로 돼 있었다. 정부로서도 파병 반대 여론을 더는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계획서 제출 시한을 두 차례 미루더니, 급기야 파병 연장을 결정했다. 대국민 약속을 뒤집은 것이다.
정부는 국회 보고서에 ‘2008년 말까지 철군’을 명시하기로 했다지만, 이것도 믿기 어렵다. 당국자조차 내년 상황은 다음 정권이 판단할 문제라고 말하는 마당이다. 이렇게 정부가 신뢰를 잃게 되면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이 힘들어진다.
파병 연장의 논리도 딱하다. 정부 당국자들은 파병 연장의 가장 큰 이유로 한-미 동맹을 들고 있다. 북핵 6자 회담과 평화체제 구축 논의에서 미국의 협조적 자세를 끌어내자면 한-미 관계를 ‘관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얼마 전 열린 차관급 전략대화에서 자이툰부대의 계속 주둔을 강하게 요청했다. 정상회담에선 평화협정 공동서명 방안도 함께 거론했다. 이라크 전쟁의 수렁에서 한국이 먼저 발을 빼지 말라는 노골적 압박과 회유인 셈이다. 대국민 약속까지 어긴 이번 연장 결정은 이런 압력에 굴복한 모양새가 됐다. 이는 결코 건강한 동맹 관계가 아니다. 앞으로도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휘둘리며 큰 대가를 치르는 쪽으로 내몰릴 수 있는 또하나의 나쁜 전례일 뿐이다. 이런 모습이 평화체제 논의에 도움이 될 리도 없다.
자이툰부대가 있는 쿠르드지역의 유전 개발과 경제재건 참여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라크 정정은 갈수록 불안해지고 있어, 이라크 중앙정부 차원의 합의나 투자 여건이 마련되기까지는 갈 길이 한참 멀다. 경제적 실리가 파병 연장의 구실이 되기에는 아직 모자란다는 얘기다.
이라크 전쟁은 이미 미국민을 포함해 인류의 공감과 동의를 잃은 침략전쟁이다. 우리 헌법은 침략전쟁을 부인한다. 원칙을 벗어난 상황논리와 불확실한 실리가 침략전쟁 참여의 핑계가 될 수는 없다. 정부는 파병 연장 결정을 취소하고, 애초 약속대로 철군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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