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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0.26 18:04 수정 : 2007.10.26 18:04

사설

국립발레단은 엊그제 수석무용수 김주원씨에게 감봉 1개월이란 징계를 내렸다. 허락도 받지 않고 외부활동에 참여했다(복무규정 20조1항 계약위반)는 이유였다. 애초 논란은 대한민국 최고의 발레리나가 어떻게 외설스럽게도 상반신 알몸사진을 대중잡지에 실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국립발레단이 부랴부랴 인사위원회를 소집하는 등 부산을 떤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발레단은 정작 본안 판단은 회피하고 지엽적인 문제만을 따졌다.

국립발레단은 이 묘수에 스스로 탄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공연한 표현의 자유 억압 시비를 피하면서, 실질적으로는 김씨의 예술표현에 대해 징계를 내려 사회의 위선적 도덕감정에 부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립발레단은 약삭빨랐을 뿐 현명하지 못했다. 발레단은 주어진 문제에 맞서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스스로 예술적 표현활동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예술가라면, 당연해 보이는 사회적 관습과 시선에 의문을 던지고, 위선적인 도덕적 통제를 거부해야 한다는 걸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무용의 언어는 몸과 몸짓이다. 특히 발레는 균형잡힌 몸과 정제된 몸짓을 생명으로 한다. 이런 몸과 몸짓을 구현하고자 혼신의 노력을 해 온 발레리나가 그의 몸을 숨겨야 할 이유는 없다. 아메리칸 발레시어터의 전 수석무용수 알렉산드라 페리나,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발레리나 실비 길렘 등은 몸을 세상에 공개했고, 안무가 지리 킬리언은 발레리나에게 스커트만 입혀 무대에 세우기도 했다.

몸에 관한 한 우리처럼 도덕적 통제가 엄격하고 위악스런 나라는 없다. 스커트의 높이나 머리카락 길이까지 단속했던 나라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몸에 대한 억압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건 아니다. 아내의 임신한 몸을 인터넷에 띄운 미술 교사를 학교에서 쫓아내라고 외쳐대는 게 우리 사회다. 그러면서 뒤로는 벗은 몸을 훔쳐보려 혈안이다. 몸을 신성스레 여기는 척하면서, 온갖 형태로 몸을 사고팔기도 한다. 이런 병적인 이중성은 몸의 억압에서 비롯된 바 크다.

몸은 생명의 집이다. 생명의 건강함과 아름다움은 몸을 통해 드러난다. 몸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누릴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관음증과 위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 김주원씨는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했다. 그러나 물의를 일으킨 건 우리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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