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0.28 17:50
수정 : 2007.10.28 18:59
사설
공정거래위원회는 제약회사들이 병·의원에 의약품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채택료(리베이트)를 제공해 온 사실을 확인하고 곧 과징금 부과 등 조처를 내리겠다고 지난주에 밝혔다. 진작 해야 했을 일이다. 건강을 담보로 한 악습을 뿌리 뽑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실태가 전부 공개되진 않았으나 일부 흘러나온 정황은 놀랍기만 하다. 사실상 모든 국내 제약회사들이 채택료로 불법 로비를 해 왔고, 규모도 엄청나다. 공정위 관계자는, 제약회사들의 연간 매출 중 20~50%가 판매관리비로 쓰이고 있었다고 전했다. 한 제약회사는 2003년부터 2006년 9월까지 매출액의 18%에 해당하는 1600여억원을 불법 로비로 의심되는 용도에 썼다고 한다. 현금과 상품권을 주고 골프접대를 하고, 기부금 명목으로 금품을 제공하는 등 구린 냄새가 나는 지출만 그렇다. 이 모두 약값에 전가됐을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국내 약값이 선진국보다도 훨씬 비싼 까닭이 이런 불법 행위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화가 치민다.
제약업계는 물론이고, 국민들 주머니 터는 일임을 뻔히 알면서도 채택료를 챙기는 의료계부터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약 선택권이 없는 환자를 담보로 천문학적인 뒷돈을 주고받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반생명적임을 자각해야 할 터이다. 단돈 천원이 없어서 병원을 못 가는 서민도 부지기수임을 생각하면 그리 할 순 없는 일이다. 의료인이 모두 그렇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를 스스로 고발하지 못했다면 그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공정위는 이번 기회를 제약업계와 의료계 사이의 불법 거래를 근절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검찰 고발도 주저해선 안 된다. 관행이 없어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조사하고 처벌해야 한다. 그게 국민을 위하고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하는 일이다.
의료계도 이젠 떳떳해져야 한다. 병·의원들은 성분명으로 약을 처방해 약값 부담을 좀 줄여보려는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을 반대하며 파업까지 한 적 있다. 나름의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번 공정위 조사는 채택료 때문 아니냐는 세간의 눈총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이런 눈총을 받지 않는 길은 너무도 간단하다. 의료계가 앞장서 받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제약회사들도 채택료를 굳이 줄 이유 없이 약효와 약값으로 경쟁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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