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1.01 18:12
수정 : 2007.11.01 18:12
사설
김대중 납치 사건과 관련한 일본 정부의 태도는 적절하지 않다. 마치무라 노부타카 관방장관은 그제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의 진상규명 의무 등을 강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날 발언을 두고 “(김 전 대통령이) 그 뒤 대통령이 됐을 때 일본 정부에 (왜)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지 이상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주 국정원 과거사위가 이 사건 조사보고서를 발표했을 때도 ‘이 시점에 34년 전 사건을 발표하는 의도가 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이 사건 발생과 이후 처리 과정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듯한 모습이다.
일본 정부는 엊그제 유명환 주일 한국대사가 이 사건과 관련해 유감을 표명하자 ‘사과로 받아들인다’며 ‘일본의 주권이 침해된 국제법상의 문제는 처리됐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는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 곧 진상규명에 적극 나서야 마땅하다. 이 사건을 벌인 주체는 한국 중앙정보부이지만 발생 장소는 일본이다. 게다가 두 나라 정부는 공권력 개입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을 전제로 진상규명 노력을 포기한 채 정치적으로 사건을 매듭지었다. 이제 한국 쪽 노력에 발맞춰 일본도 행동에 나서는 것이 순리다.
물론 진상규명의 일차적 책임은 한국 정부에 있다. 과거사위 활동도 미흡했다. 수사권이 없는 반관반민 기구인데다 정부 기관들이 제대로 협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과 김종필 전 국무총리 등 이 사건 실행 및 사후처리와 관련된 핵심 관계자 조사도 이뤄지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적어도 묵시적으로 승인한 것으로 보이는 중앙정보부의 범죄행위’라고 못박은 것은 과거사위 활동의 성과다. 완전한 진상을 밝히려면 지금이라도 정부가 본격적으로 조사하는 방법밖에 없다. 일본의 주권을 침해한 데 대해서도 모호한 유감 표명이 아니라 분명한 사과를 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다.
그렇다고 일본 정부의 책임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일본 정부가 한국의 독재정권과 결탁한 것은 일본으로서도 어두운 과거다. 일본의 당시 행태는, 1967년 동베를린 사건 때 중앙정보부가 유럽에서 납치해 온 한국인들이 프랑스·서독 정부의 항의로 되돌아간 것과 대비된다. 지금이 바로 김대중 납치 사건과 관련해 말끔하게 진실을 밝힐 적기다. 이는 한 차원 높은 한-일 관계를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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