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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09 18:35 수정 : 2007.11.09 18:35

사설

1986년 피폐한 농촌의 현실을 다뤘다가 불온영화로 낙인찍혔던 <파랑새>, 87년 서울 신촌의 한 허름한 창고극장에서 상영됐다가 압수영장 발부를 두고 정권과 한 양심적인 판사가 옥신각신했던 <오 꿈의 나라>, 88년 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미화를 위해 삶터에서 쫓겨난 상계동 주민들의 삶을 그린 <상계동 올림픽> …. 더 낮은 곳에서, 더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자본에 외면당하고 정치권력에 탄압받기 일쑤였던 영화. 그래서 식민지하 해방투쟁을 연상시키는 독립영화라는 이름이 붙은 영화들이다.

애초 흥행을 염두에 두지 않았으며, 그래서 자본과 타협할 생각이 없었고, 영상의 화려한 상차림에 신경쓰지 않았다. 오로지 소수자와 약자의 작은 고통과 진실에 초라한 카메라 렌즈를 정조준할 뿐이다. 반상업성, 권력과의 불화는 태생적이었고, 그로 말미암아 주류 사회를 부단히 불편하게 했지만, 진실에 대한 열정과 혁신적인 실험은 소재와 상상력에서 바닥을 드러낸 주류 영화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했다. 요즘 우리 영화를 이끌어가는 감독과 배우의 상당수가 80∼90년대 발흥했던 독립영화 운동의 세례를 받은 세대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올해 최고의 흥행작 <화려한 휴가>는 20년 전 <오 꿈의 나라>가 있었기에 비로소 빛을 볼 수 있었다.

엊그제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개관했다. 비록 서울의 한 극장에서 스크린 하나를 2년 동안 임대한 것이지만, 영화인들이 오매불망 꿈꾸던 공간이었다. 독립영화인들은 태생부터 잡초 근성을 갖고 있지만, 독립영화는 본시 살아남기 어려운 운명이다. 누가 그 불편한 영화에 제작비를 제공하고, 스크린을 내줄 것인가. 최근 장편 독립영화가 한해 20∼30편씩 제작되지만, 대부분 박물관으로 직행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독립영화인들의 유일한 꿈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전용관 확보였다.

그러나 이들의 앞에는 환호할 일보다 풀어야 할 숙제가 더 많다. 무엇보다 정부 재정 의존이 문제다. 비록 임대료와 사업비만 지원받지만, 이런 관계 속에서 자본과 정치로부터 독립은 불안하다. 진정한 독립운동은 지금부터인 것이다. 작품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독립영화답게 지역 시민사회 소수자들과 영화인이 영화공동체를 형성해, 생산과 유통에서 새로운 전범을 창출해야 한다. 주류 영화인도 함께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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