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1.20 19:41
수정 : 2007.11.20 19:41
사설
삼성이 명절에 책을 선물하는 것처럼 꾸며 돈다발을 보내 왔다는 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그제 증언은 의미가 크다. 삼성이 거액의 비자금을 만들어 그 돈으로 곳곳에 로비를 했다는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가 거짓이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런 일이 없었다는 삼성의 해명은 이제 믿기 어려워졌다. 진실을 밝혀야 할 검찰의 어깨도 더욱 무거워졌다.
이 전 비서관의 증언은 삼성 돈을 받은 공직자가 결코 적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방증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이 검찰뿐 아니라, 재정경제부·국세청·공정위 등에도 로비를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법무비서관에게 돈을 보낸 삼성이, 다른 청와대 인사들에게는 돈을 안 보냈겠느냐는 의심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핵심과 곁가지가 뒤바뀌어서는 안 된다. 이 사건의 핵심은 삼성이 어떻게 비자금을 조성했고 어떻게 비자금을 이용해 국가권력을 무력화하고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켰느냐다. 이 핵심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면 삼성 돈을 받은 공직자들이 드러날 것이다. 그렇다고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국가기관들이 뒷짐만 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40여 간부가 삼성의 관리를 받았다고 지목된 검찰은 특별수사·감찰본부를 꾸렸다. 청와대를 비롯한 다른 국가기관도 검찰 수사와는 별도로 내부 감찰을 벌여야 한다.
청와대의 태도는 여전히 미심쩍다. 청와대는 수사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수사기간이 길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특별검사법안에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공직부패수사처 설치를 요구하며, 삼성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해하기 어렵다. 참여정부 임기가 끝난 뒤 청와대 인사들이 특검에 불려다닐 가능성을 걱정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저지른 비리가 없었다면 두려울 게 없지 않은가.
검찰이 특별수사·감찰본부를 꾸렸다고는 하나, 수사결과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마무리는 특별검사에게 맡기는 것이 순리다. 이번 정기국회가 끝나면 대통령 선거운동이 본격화된다. 임시국회를 따로 열어 특검을 도입하는 일은 쉽지 않다. 청와대가 거부권을 무기로 특검 도입을 무산시킨다면 결과는 뻔하다. 청와대 인사들이 삼성 로비에 연루돼 있고, 그래서 삼성을 보호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만 키울 것이다. 청와대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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