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1.23 19:20
수정 : 2007.11.23 19:20
사설
삼성을 제대로 수사하는 일은 역시 어려웠다. 김용철 전 삼성 법무팀장이 폭로한 삼성 비리 의혹의 진상을 파헤치는 일에 검찰·정치권·청와대 모두 주저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검찰은 수사를 미적거리다 정치권이 특별검사법안을 발의하자 부랴부랴 특별수사·감찰본부를 꾸렸다. 특별검사법은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서 합의됐다가 한나라당이 하룻만에 번복하는 곡절을 겪고, 일부 내용이 후퇴한 모습으로 어렵게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아직도 특검 도입은 확정된 게 아니다. 청와대가 거부권 행사를 저울질하고 있는 까닭이다. 제대로 된 삼성 특검이 왜 필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모습들이다.
그래도 어제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이 핵심을 비켜 가지 않은 것은 평가할 만하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등 삼성이 이건희 회장의 아들 재용씨의 재산을 불려주는 과정에서 일어난 불법 의혹을 수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 부분이 빠졌다면 알맹이 없는 특검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최장 125일로 잡은 수사기간은 그리 넉넉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특별수사관 수를 ‘40명 이내’에서 ‘30명 이내’로 줄인 것도 아쉽다. 특별검사 임명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는 만큼, 검찰이 그 전에 수사를 최대한 진척시켜야 할 것이다. 검찰로서는 신뢰를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국회의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뜻을 강하게 내비친 바 있는 청와대는 시간을 두고 의견을 내겠다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어제 정성진 법무장관은 “이미 재판이 종결되거나,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을 특검이 수사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특검법 반대 의견을 밝혔다. 청와대가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아직 열어두고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읽힌다. 이해하기 어렵다. 삼성 관련 여러 사건에서 검찰은 그동안 적극적인 수사를 하지 않아, 비호 의혹을 샀다.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비리 의혹이 새롭게 제기되기도 했다. 수사와 재판에 대한 불신을 털어내려면 특검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히는 것이 불가피하다. 청와대가 공직부패수사처 설치와 특검법을 연계시키는 것은 더욱 우습다. 여러 정당이 합의해 통과시킨 특검법은 국회 재의에 붙여도 다시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삼성을 비호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만 키울 것이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