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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26 18:48 수정 : 2007.11.27 09:55

사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를 굳게 지키는 삼성전자는 우리의 자존심이다. 규모와 내실에서 세계 유수 기업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는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다. 삼성전자뿐인가. 삼성 계열사들은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22%에 이르는 527억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1%를 조금 넘는 피고용자로, 국내총생산의 4%에 이르는 부가가치를 만드는 초우량 기업 집단이 삼성이다. 전체 국세의 8~10%를 내, 나라살림에도 큰 기여를 한다. 삼성은 대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대기업, 이건희 회장은 가장 존경받는 현역 최고경영자로 꼽힌다. 삼성이 없는 한국경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런 삼성의 숨겨진 얼굴을 보게 된 지금 우리는 매우 당혹스럽다. 정의구현 전국사제단과 김용철 전 삼성 법무팀장의 폭로로 드러난 삼성의 일그러진 얼굴은 이른바 ‘선진경제’로 도약하지 못한 채 길을 잃고 헤매는 한국경제를 상징하는 듯하다. 회계장부 조작, 탈세, 금융실명제법 및 외국환 관리법 위반, 회삿돈을 가로채 총수 일가의 재산 불려주기 등 그가 폭로한 삼성의 뒷모습은 ‘비리 백화점’을 방불케 한다.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의 수준이 이 정도라니, 믿고 싶지 않다. 답답한 것은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데 있다. 김씨가 내막을 잘 아는 내부자인데다 그 폭로가 구체적인 까닭이다. 삼성이 자신에게 돈다발을 보냈다는 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증언과 사진 공개는 김 변호사의 폭로가 거짓이 아님도 보여줬다.

시장경제를 발전시킨 나라는 어디나 기업의 부정과 반칙으로 얼룩진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선진경제’를 이룬 나라들은 그런 과거와 결별하는 데 성공한 나라들이다. 법질서가 무력화되고 반칙을 일삼는 기업이 더 승승장구하는 나라에서는 혁신의 힘이 살아나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정부가 나서서 반칙과 부패를 척결하고, 그것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았던 것이다. 반면 많은 나라는 아직도 반칙 기업과 공직 부패에 발목잡혀 허우적대고 있다. 김 변호사가 폭로한 의혹이 사실이라면, 우리 또한 천민자본주의에 발목이 잡힌 채 아직 도약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이 ‘병’ 고칠 마지막 기회일지도

삼성의 반칙이 국가기관까지 깊이 병들게 했다는 점은 더 큰 절망감을 안겨준다. 검찰·법원뿐 아니라 상당수 공직자가 삼성이 뿌린 검은돈에 오염됐다고 김 변호사는 폭로했다. 삼성 수사에 극구 반대하고 나선 재계 단체들을 보면, 반칙 기업이 어디 삼성 한 곳뿐이겠느냐는 의문을 떨칠 수 없다. 대표적인 회계법인과 법률서비스업체도 시장의 ‘믿음’을 저버렸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언론 또한 삼성 앞에서 맥을 못 추니, 그야말로 골수 깊이 병이 든 꼴이다.

그동안 삼성 관련 의혹들이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채 묻혀버렸다. 삼성은 이번에도 의혹 대부분을 부인하고 있다. 삼성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과연 이번엔들 진실을 밝힐 수 있겠느냐는 걱정을 떨치기 어렵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검찰에 특별수사본부를 꾸리게 하고, 국회로 하여금 특별검사를 도입하게 한 국민의 힘이 살아 있는 까닭이다. 삼성의 돈 앞에 굴복하지 않은 검사와 공직자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건의 담당자들은 삼성 수사의 역사적 의미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이번에야말로 기업의 반칙과, 그것이 공직 부패로 이어지는 사슬을 끊어야 한다. 법의 엄정함을 보여주고 기업의 그릇된 경영 관행을 바로세우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큰병은 때를 놓치면 못 고친다. 이번이 가장 좋은 기회이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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