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07 판단과 선택 ② 노동
노동시장의 불안정과 양극화는 ‘경제문제’ 만큼이나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중차대한 과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속화한 기업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은 한국 노동시장을 뿌리째 뒤흔들었다. 그 결과,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서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날로 확대되고 있다.
일자리 사정은 어떤가? 1997~2004년 사이 노동자 수는 전체적으로 149만명이 늘었다. 하지만 1천명 이상 대기업 노동자는 도리어 65만3천명이나 줄었다. 늘어난 쪽은 대부분 저임금에 시달리는 50인 이하 중소 영세사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괜찮은 일자리’는 줄고, ‘질낮은 일자리’만 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가장 고통받는 이들은 일하고 싶어도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또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동 빈곤층이다. 극심한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이들이 속한 사업장의 대부분은 노동조합이 결성되지 않아 아직도 노동기본권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유감스러운 건 대선 후보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런 노동현실을 헤쳐나갈 뚜렷한 해법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후보는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법과 질서의 확립’을 강조한다. 성장만 하면 일자리는 자연스레 해결되며, 노사문제는 법적 잣대를 엄격히 적용하면 된다는 식이다. 일자리의 질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다. 정동영 후보는 사회적 일자리와 서비스 산업 확충 등 여러 방안을 열거하나 개별 방안의 효과를 면밀히 검증한 흔적을 찾기 어렵다. 권영길 후보는 시장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주창하나 정작 노동계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제시하고 있지 않다. 문국현 후보는 중소기업 지원과 노동시장 규제를 강조하는 점이 돋보이지만 둘 중 어느 것이 중심적 정책이어야 하는지 불분명하다.
성장만으로 노동시장 불안 못풀어
강조하고 싶은 점은 경제성장만으로 노동시장의 양극화나 불안정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한 해를 빼고 우리나라는 계속 성장해 왔다. 98년과 2003년 두 해를 빼고는 일자리도 계속 늘었다. 2000년 이후만 보더라도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5.2%였고, 취업자 증가율은 1.9%였다. 문제는 일자리는 늘었지만 그 대부분이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였고, 그 결과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됐다는 점이다.
노동시장 양극화와 불안정을 극복하려면 노동시장 정책의 틀과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고용조정이나 비정규직 확대와 같은 ‘수량적 유연성’이 아닌, 교육훈련과 작업조직 개편 등을 통해 노동자의 능력을 키우는 ‘기능적 유연성’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는 고용 및 생활안정을, 기업은 지속적인 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 더불어 일자리만 늘리면 된다는 근시안적 사고에서 벗어나,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란 뚜렷한 방향을 세워야 한다. 청년실업과 중소 영세업체의 인력난을 동시에 해결하는 길은 이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저임금과 빈곤의 덫에 갇힌 노동자들을 위해 ‘사회통합적 노동정책’을 다각도로 시행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최저임금 수준의 현실화, 연대임금 정책 등을 통해 극심한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 노사관계의 틀도 기업별 체제에서 벗어나 산업별로 구축되도록 노·사·정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노동조합이 산업계의 건전한 파트너로서 역량을 다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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