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2.07 19:00
수정 : 2007.12.07 19:00
사설
등급제가 처음 적용된 대학 수학능력 시험 결과가 나왔다. 보수 언론과 사교육 단체들의 주장과 달리, 동점자 속출 등으로 말미암은 등급 공백 따위의 부작용은 없었다. 등급별 분포 역시 표준 비율에 근접했다. 언어, 수리, 외국어, 탐구 등 네 영역 1등급은 644명(0.15%)이었고, 언·수·외 세 영역 1등급은 3747명(0.75%)이었다. 이른바 상위권 대학이 요구하는 변별력에도 문제가 없었다.
물론 다소 문제가 있는 과목도 있었다. 수리 ‘가형’의 경우 한 문제만 틀려도 2등급으로 주저앉는가 하면, 2등급이 표준 비율보다 3%나 많은 10.08%였고, 3등급은 2.5% 적은 9.55%였다. 1등급이 6%대로 표준비율보다 2% 많은 과목도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변별력에선 흠잡을 데 없었다. 손쉽게 조정할 수 있는 미시적 문제이기도 했다.
물론 처음 도입했으니, 수험생과 진학지도 교사의 혼란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등급 경계선에 있는 수험생의 불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혼란과 불만은 0.01점차로 당락이 결정될 때보다 심하진 않다. 그런 점에서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며 등급제를 흔들었던 보수 언론과 사교육 단체들은 반성해야 한다. 수험생을 혼란에 빠뜨린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그들이었다. 이들은 사교육의 효과가 가장 잘 반영되는 점수제를 유지하고자 일삼아 그런 비난을 남발했다.
현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과연 등급제 취지가 실현될 수 있을지 가늠하는 일이다. 등급제는 소수점 이하의 점수로 학생을 서열화하는 점수제의 폐단을 시정하고, 내신 등 다양한 전형자료의 비중을 높여 가능성과 잠재력 있는 학생을 선발하고, 소외층 배려 등 교육의 공공성을 높이도록 유도하려는 조처였다. 요컨대 학생 선발에서 수능을 보조로 하고, 내신을 중심으로 하도록 해 학교교육 정상화와 사교육 억제를 이루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밝지 않다. 대학의 비협조 때문이다. 특히 상위권 대학들은 오히려 수능의 비중을 높였고, 내신은 무력화했다. 그 때문에 등급제의 효과는 소수점 이하의 점수 경쟁을, 다소 느슨한 등급경쟁으로 바꾸는 데 그쳤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당국은 대학을 설득하는 한편, 등급을 줄이는 등의 적극적인 조처를 취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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