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2.23 18:45
수정 : 2007.12.23 18:45
사설
지난달 치러진 2008학년도 대입 수학능력 시험 물리Ⅱ 과목 11번 문제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핵심은 해당 문제가 출제 잘못으로 적어도 답이 둘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수능이 갖고 있는 성격을 고려하면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낳을 수 있는 사안이다. 이미 수능시험에서 물리Ⅱ 과목을 선택한 수험생들이 크게 반발하고, 일부 학생들은 집단소송 의사까지 밝히는 등 사태가 커지는 모습이다.
그런데도 수능시험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태도는 안이하기 짝이 없다.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을 서둘러 내려 불신을 자초하고 있기도 하다. 해당 문제를 감정한 한국물리학회가 엊그제 “답이 둘이 될 수 있다”고 공식 표명한 데 대해 평가원은 곧바로 대책회의를 열어 “애초 발표한 대로 하나만 정답을 인정”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나름의 신속한 대처로 볼 수는 있으나,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한 졸속 결론이란 비판을 받을 만하다. 평가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고교 교육과정 내용과 수준에 비춰 이상이 없다”고 밝혔다. 고교 교육과정 범위 안에서 보면 답은 하나라는 주장이다. 너무나 궁색한 해명이다. 물리학 명제의 참과 거짓이 어떻게 고등학생과 학자 등 대상과 수준에 따라 따라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물리학회는 적어도 이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학술단체다. 이 단체가 오류를 지적했는데도 평가원은 기껏 출제자의 의도가 고교 수준에 있다며 답을 하나라고 강변하고 있다. 평가원은 무엇보다 학회의 지적이 맞는지 그른지부터 살펴 견해를 밝혀야 했다.
평가원이 강조한 고교 교육과정 범위라는 기준도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가 있다. 더구나 평가원의 주장과 달리 몇몇 교과서에는 평가원이 말한 교육과정의 범위를 벗어나는 내용도 언급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래저래 평가원이 내린 결론의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평가원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바란다. 사건의 확산을 막거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어설픈 해명과 고집으로 일관하다가는 더 큰 사태를 불러 일으키거나 돌이킬 수 없는 멍에를 질 수도 있다. 이번 사건은 공신력을 근간으로 해야 할 평가원은 물론, 대입 수능시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평가원은 이제부터라도 원칙과 정도로 이번 사건을 대처하기 바란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