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2.25 18:46
수정 : 2007.12.26 01:07
사설
얼마 전 국회를 통과한 동서남해안권 발전특별법은 국가의 법체계를 파괴하는 괴물이다. 국토건설 종합계획법 등 기존의 서른여섯 가지 법률 69개 조항을 무력화한다. 연안권 출신 국회의원들의 한건주의와 지역 개발업자의 이해가 유착해 만든 국토 파괴법이기도 하다. 국토의 3분의 1을 막개발 대상에 포함시킨다.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가 강력히 저항하고, 대통령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거부권 행사를 건의한 것은 이 때문이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정치권의 이런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법은 연안을 통합·관리하던 해양수산부와 국립공원의 지정과 관리를 맡아 온 환경부의 권한을 사실상 지방자치단체에 넘기는 것을 뼈대로 한다. 시·도 지사의 요청에 따라 건교부 장관은 국립공원, 수자원 보호구역을 막론하고 개발구역으로 지정하고, 개발구역에선 인허가 절차를 면제받고, 필요할 경우 개인 토지도 강제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지자체와 개발 사업자에게 무소불위의 권한을 주는 것이다. 대상 지역엔 설악산·오대산·한려해상·다도해·태안해안·가야산·월출산·지리산·변산반도 등의 국립공원과 자연공원 29곳, 그리고 연안의 모든 섬들이 포함된다. 국토를 종합 관리해야 할 중앙정부의 의무를 포기하도록 하는 법률이 아닐 수 없다.
처리 과정이나 결과는 법 내용만큼이나 유치하다. 처음엔 남해안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이 특별법 제정을 추진했다. 그러자 동해안 출신이 동해안 특별법을 추진했고, 막판에 서해안 출신이 나서자 동서남해안을 모두 포함하는 특별법으로 통과시켰다. 이 법이 상임위를 통과하자, 내륙 지역 출신들은 ‘낙후지역 개발 및 투자촉진특별법안’을 발의했다. 국토의 59%를 개발대상 지역으로 포괄하는 법안이다. 한심하지만, 해안은 허용하고 내륙은 불허할 순 없는 노릇이다. 두 법을 합치면 대도시를 제외한 전국토가 개발구역 대상이 된다. ‘개그’라고도 할 수 없다.
청와대는 국무회의 토론을 통해 거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토론이야 좋지만, 건교부 등 ‘막개발 부처’들과 합리적 논의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중앙정부의 통제 아래서도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재앙은 발생했다. 지자체에 맡길 경우 주민 삶터와 자연생태계가 어떻게 파괴될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거부권 행사는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에 대한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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