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2.28 18:46
수정 : 2007.12.29 03:59
사설
파키스탄인민당 지도자인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가 그제 테러로 숨졌다. 그의 피살은 쿠데타와 정적 살해로 점철된 파키스탄 현대 정치사의 연장선에 있다. 그의 아버지로 첫 민선 총리였던 줄피카르 알리 부토는 1979년 쿠데타 세력에 의해 목숨을 잃었으며, 두 남동생도 이후 비극적 죽음을 맞았다.
느리게나마 진전되던 파키스탄의 민주화는 이번 사태로 다시 위기에 처했다. 한동안 반정부 폭력사태가 늘어나고 군사정권은 무력으로 대처할 가능성이 높다. 변경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이슬람 무장세력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세력 확대를 꾀할 것이다. 혹시라도 세계 유일의 이슬람 핵보유국인 이 나라 전역이 혼란에 빠져 핵무기 관리가 느슨해지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이번 사태는 미국이 주도하는 대테러 전쟁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국은 이 전쟁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페르베즈 무샤라프 군사정권을 적극 지지해 왔다. 민심이 이반하는 등 무샤라프 정권의 권력 기반이 흔들리자, 망명 중이던 부토를 최근 귀국시켜 권력을 분점하도록 종용한 것도 미국이다. 친서방적인 부토를 통해 이슬람 무장세력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겠다는 미국의 구상은 이번 사태로 근본적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앞으로 미국과 무샤라프 정권은 파키스탄내 대테러 전쟁에 더 많은 병력과 자원을 투입하려는 유혹에 빠질지 모른다. 이는 이슬람 세력 전체의 반발을 불러 모순을 더 심화시킬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지속적인 민주화를 통해 국민 통합을 유도하고, 직접적 범죄 혐의가 있는 조직이나 개인으로 대테러 전쟁 대상을 최대한 줄여가야 한다. 전화위복을 이뤄낼 미국과 무샤라프 정권의 결단이 요구되는 때다.
테러는 용납해선 안 될 범죄 행위다. 하지만 무력 대응만으로는 테러를 완전하게 막을 수 없다. 세계는 이번 사태가 주는 교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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