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2.30 18:50
수정 : 2008.01.03 02:31
사설
한국이 어제부로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사형폐지 국가로 인정받았다. 국제사면위원회는 10년 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으면 사형폐지 국가로 분류하는데, 어제가 꼭 10년째 되는 날이었다. 국제사회에서 인권국가로 인정받는 데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제 중요한 건 발걸음을 되돌리지 않는 것이다. 여전히 사형제는 우리 곁에 있다. 64명의 사형수가 죽음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지낸다. 그들의 긴 두려움을 덜어줄 때가 됐다.
사회질서 유지 차원에서 사형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남용하지 않으면 된다고도 말한다. 사형은 인권을 완벽히 부인하는 행위라는 국제사면위원회의 주장을 굳이 더 들 것도 없다. 생명의 가치는 절대적이다. 사람의 생명을 거둘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범죄예방 효과도 실제론 없다는 게 여러 연구 결과다. 더 현실적인 문제는, 언제든 오판에 의해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고, 권력이 남용 또는 악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민주화가 이뤄졌으니 이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역사의 진전 방향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실 논란을 벌이자면 끝이 없다. 인권국가로 한 단계 더 도약하고자 하는 큰 뜻과 결단만 남아 있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대부분의 선진국을 포함해 100여 나라가 이미 사형제를 폐지했다. 그렇다고 이들 나라에서 사회질서가 후퇴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미국과 일본은 사형제 때문에 인권 면에서는 국제사회에서 존경받지 못하는 나라로 남아 있다. 미국과 일본 제도를 많이 차용해 온 우리가 이들보다 앞서 간다면 국제사회의 평가는 남다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범죄 예방을 위해 사형제는 필요하다는 견해를 보여 왔다. 이 당선자도 전향적인 결단을 내리길 바란다. 17대 국회에는 절반이 넘는 175명의 의원이 참여한 사형제 폐지 법안이 제출돼 있고, 10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데 대해 국민들도 별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등 여건은 무르익었다. 인권을 중시하는 대통령이라는 상징 면에서도 의미 있는 일일 터이다.
노모와 아내, 4대 독자 아들까지 일가족 셋을 유영철한테 잃은 고정원씨의 말이 다시금 울려온다. “걔(유영철)를 죽인다고 내 가족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 또 다른 죽음이 하나 늘어나는 것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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