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새해 한반도는 커다란 변화에 직면해 있다. 지난 대선에서 10년 만에 정권이 교체됐고, 4월에는 총선도 예정돼 있다. 6자 회담 합의 이행이 지연되고 있으나, 한국전쟁 이래 처음으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가 현실성을 갖고 진행되고 있다. 이렇듯 변화 소용돌이 속에서 대한민국 정부수립 60년을 맞는 새해 아침, 우리가 바라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다시 한번 가다듬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60년 동안 우리가 쌓아온 역사적 경험에 터잡아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이상과 목표를 설정할 때 비로소 올바른 변화의 방향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60년, 우리는 온국민의 분투노력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로 하나의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 내부를 들여다 보면 그 성과가 아직 단단한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소득은 2만달러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국민 대다수는 소득·자산, 직업 안정성, 가족유대 감소로 말미암은 불안감 등 구조화된 불안에 시달리며 물질주의적 가치에 휘둘리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경제를 화두로 내건 이명박 후보가 많은 도덕적 흠결에도 압도적으로 당선된 배경이기도 하다. 견제와 균형…민주주의 내실 채워가야 그러나 지나친 물질주의 경도는 우리가 힘겹게 이룩해 온 민주주의의 토대는 물론, 공동선 등 우리 사회가 키워 온 소중한 가치 기준조차 위협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두 차례의 민주적 정권교체로 언뜻 보면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착한 듯하지만, 우리 민주주의의 실제 수준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민주정치의 근간이 돼야 할 정당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또 각급 선거에서 집권당의 패배가 축적돼 중앙과 지방의 행정권력은 물론 의회권력까지 일당 지배 아래 들어가 민주주의의 버팀목이 될 견제와 균형 기능이 상실될 위기에 놓였다. 사회경제 분야로 눈을 돌려보면, 지난 한 해 우리는 사회의 근간을 위협할 정도로 신뢰 위기를 겪었다. 우리가 자랑으로 여겼던 세계적 기업 삼성의 치부가 폭로되고 신정아 학력위조 사건이나 국세청장의 수뢰 사실 등이 밝혀지면서 사회 각 부분이 거짓의 성채 위에 건설돼 있다는 자괴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 좀더 품격 있는 나라가 되도록 할 공동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할까? ‘우리나라의 바람직한 모습’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3분의 2가 ‘복지가 잘 갖춰져 있고 힘없는 사람이 보호받는 사회’라고 답한 <한겨레> 새해 여론조사 결과는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이를 풀어보면 ‘사람이 사람답게 대우받는 사회’다. 그 일차적 요건이 질좋은 일자리와 사회 안전망임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경제문제 해결은 품격의 필요조건일지언정 충분조건은 못 된다. 태안반도 기름띠 제거에서 나타난 우리 국민의 공동체 의식과 역동성을 더 큰 힘으로 묶어내자면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들과 대기업 등 사회 주도세력의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 이명박 특검과 삼성 특검이 유야무야돼선 안 될 이유다.사회주도층 신뢰회복이 역량 결집 조건 대한민국 60년은 분단 60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북한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한반도 남쪽만의 질적 변화를 이뤄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북한과 평화·상생의 관계를 수립하는 일은 안보위기 해소뿐 아니라 새로운 경제 동력 확보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새 정권이 유념할 일은 그동안 북-미 관계에서, 그 진전의 계기를 만들어주고 동력을 제공해준 남한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6자 회담 당사국들의 상응조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주춤거리는 상황에서 새 정권마저 행동을 머뭇거릴 경우 평화체제 구축 동력을 잃을 위험이 있다. 이런 모든 일이 가능하려면 의견이 다른 상대의 말에도 귀기울일 줄 아는 풍토 조성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언론의 책임이 막중하다. 이땅의 언론은 그동안 상대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합리적 토론을 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대신 정치적 냉소주의를 부추기고 이념 대결을 조장하며 극단적인 편가르기를 해 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언론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한겨레>도 신뢰받는 언론으로 소임을 다하고자 했지만 그 비판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한번, 냉철하되 따뜻함을 잃지 않으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품격있는 언론으로서 책무를 다할 것임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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