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1.02 19:03
수정 : 2008.01.03 15:47
사설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삼성중공업의 대형 크레인과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가 충돌해 대규모 해양 오염이 발생한 지 거의 한 달이 흘렀다. 원유가 1만2547㎘나 흘러나와 시커멓게 변해버린 150㎞의 해안은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우리 땅, 우리 바다니 책임을 따지기 전에 기름 한 방울이라도 걷어내려는 노력이 먼저인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20∼30년이 지나야 회복이 가능한 엄청난 사고가 터졌는데도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사람 한 명이 없다. 주민과 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서도 ‘도대체 사고 낸 사람은 뭐 하고 있나’ 하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사고 경위도 거의 드러났다. 이쯤 되면 사고 당사자인 삼성이 나서 주민과 국민들 앞에 고개 숙여 사과하고, 피해 복구를 약속하는 게 마땅한 도리일 것이다. 그러나 삼성의 태도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철저한 책임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 항해를 맡은 하청업체 책임이니 우리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식이다.
하지만 항해를 맡은 회사는 자본금이 5천만원에 불과해 애초부터 사고를 책임질 수 없는 회사다. 검찰과 경찰도 삼성중공업의 책임을 인정해 회사를 입건한 상태다. 삼성은 사고 원인을 두고서도 초기에 ‘천재지변에 의한 불가항력적인 사고’라고 주장했으나 나중에 삼성중공업 쪽이 항해일지를 조작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누가 보더라도 법적·도덕적으로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해양오염 처리에는 세계적으로 오염자 부담 원칙이 확고하게 정립돼 있다. 1989년 알래스카에서 액손 발데즈호가 대규모 기름유출 사고를 냈을 때 액손은 임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해 기름을 제거하는 데만 21억달러를 쏟아부었다. 또 환경 복원에 10억달러, 어업보상금으로 2억6천만달러 등 모두 60억달러 가까운 돈을 부담했다. 누가 시키기 전에 사고를 낸 당사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세계적인 기업이라는 삼성의 모습은 정작 어떤가. 사과 한마디 없이 구차한 변명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가 옆에서 보기에도 낯뜨겁다. 글로벌 기업이면 글로벌 기업답게 처신해야 한다. 삼성은 더는 비겁한 모습을 보이지 말고 오염 당사자로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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