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1.09 19:06
수정 : 2008.01.09 19:06
사설
삼성 특검이 오늘부터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한다. 삼성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비자금 계좌의 존재를 폭로한 지 80여일 만이다. 검찰의 수사 회피로 특검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됐지만, 검찰 고위간부 출신인 조준웅 특별검사가 이번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은 여전하다. 특검은 철저한 수사로 진실을 낱낱이 파헤침으로써 그런 걱정이 기우였음을 보여줘야 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그 사이 검찰이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일부 수사를 벌였으나, 기초수사일 뿐이었다. 특검은 무엇보다 삼성이 조성한 비자금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의심이 가는 삼성 임원의 계좌는 철저히 조사해야 할 것이다. 비자금 사용처, 특히 정·관계 등 권력기관을 향한 로비 의혹의 진상을 밝히는 것도 특검의 몫이다.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에스디에스 전환사채를 이용한 경영권 불법 승계와 이에 대한 수사·재판 과정의 불법 개입 의혹도 핵심 사안이다. 수사기간과 인력이 넉넉하지는 못하나, 특검이 수사에 미리 선을 긋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내부 고발자의 구체적인 제보가 있는 사건이다. 수사 결과에 대한 기대도 그만큼 크다.
특검의 성패는 성역 없는 수사를 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등에 대한 수사에서 검찰은 한번도 이건희 삼성 회장을 불러 조사하지 않았다. 수천억원의 이득이 오간 계열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총수인 이 회장의 관여없이 이뤄졌으리라고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자금 조성과 사용도 마찬가지다. 특검은 이 회장뿐 아니라, 그 어떤 권력자도 거리낌 없이 소환해야 한다. 그리고 위법사실이 확인되면, 어떤 정치적 고려도 하지 말고 법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이번 수사는 우리의 낡고 썩은 기업경영 관행을 뿌리뽑고 선진경영의 싹을 틔우는 역사적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정반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부당한 힘 앞에 특검이 무릎을 꿇거나 타협한다면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수사가 부실할 경우 특검 거부와 불신임에 나설 것이라는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경고를 특검은 결코 가볍게 봐선 안 된다. 정치권과 재계단체도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 특검에 압력이 될 수 있는 발언이나 움직임은 부메랑이 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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