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1.15 18:56
수정 : 2008.01.15 19:49
사설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나눈 대화록을 언론에 유출한 장본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놀라운 일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국가 최고정보기관의 수장이 중요한 기밀을 통째로 특정 신문사에 넘겼으니, 도덕적 해이를 넘어 있어선 안 될 범법행위다. 국정원법은 국정원 직원이 재직 중에는 물론 퇴직한 뒤에도 직무상 얻은 비밀을 누설하면 형사처벌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 원장도 여기서 예외일 순 없다.
이번 사건은 국정원이 지난 역사의 경험에서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더욱 안타깝다. 살펴보면 옛 중앙정보부에서 국가안전기획부를 거쳐 지금의 국정원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보기관 수장의 상당수는 퇴임 뒤 구속 등 ‘험한 일’을 겪었다.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를 겨냥해 북풍공작을 주도했던 권영해 전 안기부장이나, 불법감청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된 김대중 정부 시절의 국정원장들이 대표적이다. 그때마다 국가 정보조직은 크게 흔들렸고, 신뢰도 땅에 떨어졌다.
국정원이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직원들의 정치 개입을 금지하는 등 정치적 중립을 거듭 밝힌 것도 이런 일이 다시 벌어져선 안 된다는 공감에 터잡은 것이었다. 김 원장 스스로 정보 유출과 정치권 줄대기를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런 이가 직접 정보를 유출했으니, 다시 태어나겠다는 국정원의 다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사실, 언론에 정보를 넘겨 여론 조작이나 정치적 반전을 시도하는 것은 정치공작이 횡행하던 시대의 상투적인 수법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정원은 큰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새 국정원장 임명을 전후해 인적 쇄신과 조직 및 기능 재편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으레 있는 일에 그쳐선 안 된다. 정보기관의 정치적 중립이나 쇄신이 다짐만으론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은 이번 사건으로도 확인됐다. 정치적 중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는 일과 더불어 국정원의 기능에서 국내 정치정보 수집 따위부터 말끔히 없애야 한다. 이번 사건이 새 정부의 ‘자기 사람 심기’에 활용되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잘못에 대한 책임은 엄히 물어야 하겠지만, 정치적 이유의 솎아내기로 이어지면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은 또 그만큼 멀어진다. 김 원장 사건을 국정원이 제자리를 찾는 전환점으로 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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