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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31 20:05 수정 : 2008.02.01 18:11

사설

어제 서울대 교수들이 ‘한반도 대운하’ 문제를 따지는 토론회를 열었다. 운하 저지를 위한 첫 작업이다. 이번 행동은 반대운동에 단순히 숟가락 하나 더 올리거나, 좀더 전문적인 정보와 식견을 전했다는 정도의 의미에 그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 지식인 사회가 오랫동안 외면했던 지식인의 사명에 대한 논의를 되살리는 계기였다는 점에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지금은 ‘언제 그런 걸 논의했나?’ 싶을 정도로 잊혀진 논의다. 그러나 기본권이 유린당하거나, 사회적 약자가 억압당하고 착취당할 때 그리고 국론 분열로 공동체가 심각한 위기를 겪을 때, 정치·경제적 권력이 국민을 기만할 때, 지식인 사회에서 가장 예민하게 논의됐던 주제였다. 당시 지식인 사회는 논의에 그치지 않고, 기본권 회복이나 사회정의 구현을 위해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 마지막 보루가 바로 교수 사회였다.

그러면 논의의 실종은 우리 사회가 인권 유린이나 정치·경제적 억압과 사회적 차별 등에서 자유로워졌기 때문일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금도 불평등과 차별, 그리고 기만은 여전하다. 오히려 지식인 사회가 스스로 학문과 지식을 돈벌이나 권력 획득 혹은 신분 상승의 도구로 변질시킨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적게는 1500여명, 많게는 3000여명의 교수가 정치판에 직접 혹은 간접으로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학문적 식견을 현실에서 구현하려는 교수들도 일부 있었지만, 대개는 정치권에 줄을 대고 출세하려는 ‘정치 교수’(폴리페서)들이었다. 박범훈 교수처럼 대학 총장 자격으로 이명박 선대위 분과위원장을 맡은 경우도 있었다. 지식인의 사회적 소명 운운했다가는 비웃음만 살 형편인 것이다.

사실 한반도 운하만큼 중요한 문제는 없다. 그 영향은 당대보다는 미래세대에서 더 치명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제성이나 환경 영향 등에 그치지 않는다. 후손에게서 빌려 쓸 뿐인 국토를,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파괴할 수 있다고 믿거나, 주권자인 국민을 단순한 여론 조작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명박 당선인 쪽 사람들의 태도야말로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서울대 교수들은 토론회 공지문에서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책무를 하기 위해’ 나섰다고 했다. 이번 행동이 잠든 지식인 사회를 깨우는 타종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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