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1.31 20:05
수정 : 2008.01.31 20:05
사설
서울중앙지법이 삼성차 채무 변제를 둘러싼 삼성과 채권단 사이의 소송에서 채권단의 손을 들어줬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개인 소유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를 주당 70만원씩 계산해 삼성차 부채를 변제하고 이를 채우지 못할 경우 삼성 계열사들이 책임지겠다고 했던 채권단과의 약정이 유효하다는 요지다.
오래 전에 해결됐어야 할 삼성차 채권 문제가 법원 판결로 9년 만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삼성이 보여준 무책임하고 이중적인 태도는 다시 한번 우리를 실망하게 한다.
삼성 주장대로 이건희 회장이 책임이 없었다면 삼성생명 주식을 출연하지 않고 그대로 회사를 청산하는 절차를 밟으면 될 일이었다. 대신 삼성차 임원진은 부실경영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을 지면 된다. 당시 이 회장은 사재를 출연해 삼성차 문제를 처리하는 대가로 사실상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받았다. 또 삼성 계열사들에 끼칠 충격과 이미지 훼손을 막아냈다. 법적 책임 여부를 떠나 애초부터 정치적인 해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채권단과 한 사재출연 약정을 강압에 의해 억지로 체결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책임 회피로 일관해 온 삼성의 모습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급할 때는 계열사까지 동원해 주당 70만원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위기를 모면한 다음에는 강압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은 누가 보기에도 낯뜨거운 행동이었다. 이는 이 회장이 약정한 2조4천여억원의 삼성차 부채를 상당부분 공적자금이 투입된 채권단에 떠넘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삼성차라는 부실기업 뒤처리를 국민 세금으로 해 달라는 얘기 아닌가.
한보철강, 대우그룹 등 외환위기를 전후해 무분별한 과잉투자와 부실경영으로 문을 닫은 회사의 총수와 경영진은 거의 대부분 민형사상 책임을 벗어나지 못했다. 유독 삼성만이 사재출연이란 방식으로 이를 피해 갔다. 부실 경영으로 국가 경제에 막대한 손실을 입힌 기업주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나라의 질서가 잡힐 수 없다. 경제정의 확립 차원에서도 용인될 수 없는 문제다.
삼성차 문제는 더는 소송으로 갈 문제가 아니다. 2심, 3심으로 끌고가지 말고 삼성 쪽이 깨끗하게 약속을 이행함으로써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계속 시간을 끈다면 이 회장과 삼성의 이미지에 먹칠만 하는 꼴이다. 삼성쪽의 신속한 결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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