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2.04 19:24
수정 : 2008.02.04 19:24
사설
의료법 개정안이 어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됐다. 이날 국회에서는 어떤 논의 진전도 이뤄지지 않았다. 상당수 의원들이 지난해 들끓었던 반대 여론을 의식한 때문으로 보인다. 총선을 앞둔 마당에 낙선운동까지 벌이겠다며 반발하는 보건의료 단체들을 굳이 자극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정치적 셈법이 작용한 결과로 볼 수도 있다. 논의 내용도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모양새다. 논란이 큰 조항들을 법안에서 빼거나 논의를 유보하는 식이다. 이유가 어떻든 국회의 신중한 접근은 나쁘지 않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이번 개정안엔 국민편의 차원에서 필요한 부분만 넣었다”며, 통과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개정안도 여전히 논란이 큰 조항을 적잖게 담고 있다. 개정안 60조가 대표적이다. 이는 지난해 복지부가 발표할 당시에는 61조였다.
현행 의료법은 누구든지 환자를 유인하거나 알선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개정안의 60조 2항 2호는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 비급여 부분에 대해서는 외국인 환자들을 알선·유치할 수 있게 허용했다. 재미동포 등 국외 환자를 유치하려는 뜻에서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외 환자 유치가 가능하도록 유능한 의료진을 갖춘 대형 병원이 편법으로 비급여 진료를 국내 부유층에게 허용해 의료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60조 2항 3호는 더 걱정스럽다. 발표 초기부터 논란이 된 것인데, 보험업법에 따른 민영 의료보험업자가 비급여 진료에 대해 병원 등과 직접 가격계약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행법은 국민건강보험공단만 의료기관과 직접 가격 계약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의료기관 사이의 가격 경쟁과 서비스 개선을 유도하고자 둔 조항이란 게 정부의 설명이나, 위험천만한 조항이 될 수도 있다. 이 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민영 의료보험 회사들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비슷한 위치에 서게 된다. 신의료기술은 도입되자마자 건보공단이 아닌 민영보험사의 영업 대상이 돼, 나중엔 이들 보험사가 다루는 서비스는 고급, 건강보험이 다루는 건 저급이라는 인식이 형성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런 걱정들이 지나친 것일 수도 있지만 가뜩이나 의료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선 기우만은 아니다. 국회는 이 점을 새겨 충분한 논의를 해야 한다. 섣불리 통과시켜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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