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2.13 20:14
수정 : 2008.02.13 20:14
사설
정부가 제출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상정됐다. 김원웅 통외통위 위원장은 비준안 상정 뒤 “국익 부합 여부를 철저히 검증한 뒤 표결로 처리하겠다”고 밝혔지만 “비준안의 17대 국회 처리는 정치적 책무”라며 국회 통과를 기정사실화했다. 재계의 얄팍한 논리에 밀려 졸속 처리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2월 임시국회 처리를 요구하는 재계의 논리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미국 대선에서 집권이 유력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나 버락 오바마 후보가 자유무역협정에 부정적인 만큼 미국 의회의 조속한 비준을 끌어내기 위해 한국이 먼저 비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극히 일방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이다. 미국 의회가 대선 전에 비준안을 통과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는 8월 전당대회 때부터 본격적인 대선에 접어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뒤 재협상을 요구해 올 가능성이 높다. 조기 비준론이야말로 국익을 요행수에 맞기는 위험한 발상이다.
조기 비준을 말할 정도로 충분한 검토가 이뤄졌는지도 의문이다. 국회는 지난해 6월 협정이 체결된 뒤 철저한 검증을 약속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 가운데 협정문을 제대로 읽어본 의원이 몇이나 되는지 묻는다. 국회는 대선을 치르느라 개점 휴업 상태였고, 자유무역협정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재계가 조기 비준론을 꺼내니까 별다른 검토도 없이 비준안을 상정시켰다. 지금으로 봐서는 대충 검토하고 밀어붙일 기세다. 이게 국회가 말하는 철저한 검증인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얻는 것보다 내주는 것이 훨씬 많다. 자동차와 섬유 등에서 이득을 얻는 대가로 농산물과 제약 분야를 사실상 포기하고, 유전자 조작물질과 연령 제한 없는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는 등 국민의 건강도 내줘야 한다. 자국 법률을 한 글자도 고칠 수 없다는 미국과 달리 우리는 수십가지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
점진적인 시장 개방은 필요하다. 그러나 개방이 바로 경제성장과 국가적 부를 보장해준다는 환상은 금물이다. 협정 체결로 돌아오는 이득도 몇몇 대기업들 차지다. 국민 개인에게 돌아올 몫은 별반 없다. 또한 최소한의 국민적 토론과 검증도 거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서둘러 비준안을 통과시켜 미국에 갖다 바쳐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검증은 1년, 2년이 걸리더라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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