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2.20 20:05
수정 : 2008.02.20 20:05
사설
1959년부터 쿠바를 통치해 온 피델 카스트로 대통령(국가평의회 의장)이 그제 사임을 발표했다. 그가 이끈 쿠바가 냉전 시기 최전선의 하나였음을 생각하면, 그의 퇴장은 한 시대의 마감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여전히 냉전의 잔재 속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더 그렇다.
카스트로의 퇴장이 당장 큰 변화를 몰고오지는 않을 듯하다. 누가 후계자가 되든 적어도 카스트로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급작스런 변화를 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퇴장 자체가 변화 과정의 시작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모든 독재체제가 그렇듯이 쿠바 역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가장 큰 과제는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대외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당지배 체제를 개혁해 국민 참여를 크게 확대시키는 민주화가 필수적이다. 쿠바는 보건·교육 등의 분야에서 제3세계 나라 가운데 비교적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치 민주화는 이런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대외관계 변화는 쿠바보다 미국의 손에 달렸다. 미국은 카스트로 집권 직후부터 시작한 경제봉쇄를 냉전이 끝난 뒤에 더 강화했다. 미국의 이런 압박은 쿠바의 변화를 유도하기는커녕 카스트로의 장기집권에 더 기여한 것으로 비판받는다. 최근 쿠바는 일관되게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원하고 있으나 조지 부시 행정부는 민주화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며 쿠바의 체제변화를 꾀하는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고 있다. 중동 나라들에 취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태도다. 반면 미국 의원들 사이에서는 시대착오적인 대쿠바 경제봉쇄를 해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카스트로가 물러난 지금이 바로 그런 쪽으로 움직일 적기다.
쿠바와 북한은 비슷한 점이 적잖다. 쿠바가 그렇듯이 북한도 후계자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쿠바가 민주화 압력을 받는 것처럼 북한의 장기집권 체제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 역시 쿠바처럼 외세의 위협을 빌미로 삼는다. 북한이 분단국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냉전 유산이 대미 관계 개선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도 쿠바와 마찬가지다. 그래서 카스트로 퇴장 이후 쿠바의 변화는 북한의 장래 모습을 비춰줄 거울이 될 수 있다.
쿠바는 스스로 민주적 변화를 꾀하고 미국은 낡은 대결 구도에서 벗어남으로써 능동적으로 대결적 국제관계를 평화적으로 해소하는 모범을 만들어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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