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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미대사라고 예외는 아니다 |
홍석현 주미대사 일가가 네 차례에 걸쳐 위장전입으로 논밭을 사들인 사실이 재산 공개 과정에서 드러났다. 1975년, 79~81년, 84년, 2002년 홍 대사와 그의 어머니, 부인, 큰아들 등의 주민등록을 옮기는 방법으로 경기도 이천과 남양주에서 사들인 농지는 2만2천여평에 이른다. 84년은 홍 대사가 대통령 비서실장 보좌관으로 공직 생활을 할 때이고, 2002년에는 공직에 못잖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중앙일보〉 회장으로 있었다. 우리 농지법에서 철칙으로 지켜온 경자유전 원칙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사회악으로 꼽히는 부동산 투기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공직자 결격 사유가 아닐 수 없다.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를 시작으로 올 들어 벌써 네 사람의 장관급 인사가 위장전입 등 부동산 투기의혹으로 낙마한 데 이어 또 이런 문제가 불거진 것을 보는 이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지도층의 도덕성이 이 수준밖에 안 되는지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홍 대사는 즉각 경위를 설명하고 위장전입에는 사과했다. 그러나 사과가 흠결을 모두 치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홍 대사 스스로 용퇴하거나 청와대가 임명을 철회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청와대는 “투기목적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며 “주미대사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결격이나 부적격 요인으로 보지 않았다”고 밝혔다. 홍 대사는 지난해 말 내정됐고 올해 2월15일 임명됐다. 청와대의 해명이 당시의 인식을 밝힌 것이라면 모르겠으나 지금도 그렇게 본다면 안이하기 짝이 없다. 그 뒤 장관급 공직자들이 잇따라 물러난 데서 보듯 국민들의 눈은 한층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업무 관련성이 다르다고 주장하더라도 군색하다. 그간 물러난 고위 공직자들도 직접적 업무 관련성보다는 도덕성 탓에 낙마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주미대사는 외국에서 나라의 얼굴구실을 하는 대사 중에서도 비중이 가장 큰 자리가 아닌가?
공직자의 준법성이나 도덕성이 어느 수준이어야 할지를 두고 논란이 있을 수 있고, 합리적 기준 마련은 과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공감대를 이룰 새 기준이 설 때까지는 같은 잣대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그러지 않으면 인사검증 기준이 무너진다.
홍 대사가 아그레망(외교사절 임명에 대한 상대국의 동의)까지 받은 마당에 청와대가 외교적 체면상 임명을 철회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점은 이해되지만, 엄격해진 국민의식에 맞추는 고민이 필요하다. 국민은 언론사 사주여서 특별 대접을 받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우선은 당사자의 현명한 선택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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