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2.22 19:30
수정 : 2008.02.22 19:30
사설
태안해안 국립공원을 기름으로 덮어버린 재앙이 발생한 지 77일 만에 자원봉사자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생업을 미룬 채 삭풍 속에서 땀과 눈물을 흘린 이들 덕분에 국립공원의 해안은 일단 제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 ‘미쿠니 기적’의 경우 사고 후 석 달 동안 30만명의 자원봉사자가 다녀갔음을 상기하면, 우리 국민의 이타심과 헌신성은 단연 돋보인다.
‘자원봉사자 100만명’은 감동적이지만, 충남지사가 호언한 ‘서해안의 기적’은 아직 없다. 봉사자와 주민들이 추스른 것은 겉모습뿐이다. 바닷속 타르 덩어리, 손길이 닿지 않는 섬과 절벽에 엉겨붙은 원유찌꺼기, 모래밭 깊숙이 스며든 기름은 여전하다. 개펄·바다 밑 생태계가 언제나 회복될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따라서 어선은 출어하지 못하고, 갯가에서 바지락·굴·낙지 따위를 거둬들이지 못한다. 관광객의 발길은 끊겨 지역경제는 수렁 속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서해안 기적 운운할 수 있을까. 그 철없는 태도가 한심하다.
보상·배상을 위한 정치권과 정부, 사법 당국의 조처는 화만 돋운다. 검찰은 무리한 운행 속에서 항로를 이탈해 정박해 있던 유조선을 들이받은 예인선단(삼성중공업)에 대해 중과실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국회가 마련한 지원특별법안 역시 보상과 배상 의무를 유조선 쪽에만 지워 삼성중공업은 빠져나갈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추가기금협약에도 가입하지 않아, 피해액이 3000억원을 넘어도 그 이상 보상받을 수 없다고 한다.
자원봉사도 보상받을 수 있었지만, 그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소득을 증빙하기 어려운 영세 어민이나 자영업자들이 보상받도록 하려는 지원 대책도 부실하다. 시프린스호 기름유출 사고 당시 정부의 부실 대책으로, 피해액은 2000억원에 이르렀으나 어민 보상액은 고작 150억원뿐이었다. 게다가 환경사고 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오염자 부담 원칙도 정부가 제대로 관철할지 의심스럽다. 액슨 발데스호 사건과 관련된 미국 연방법원 항소부 판결 외에도, 프랑스의 1심 형사재판부는 폭풍에 좌초한 에리카호 기름유출 사고와 관련해 지난 1월 2780억원 규모의 징벌적 배상금을 내도록 판결했다.
지금도 주민들의 피눈물은 여전하다. 기적 운운할 게 아니라, 한푼이라도 더 받아내도록 이를 악다물고 뛰어다니는 게 정부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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