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오늘 이명박 정부가 공식 출범한다. 우리를 둘러싼 주변 환경의 엄혹함과 국내에 산적한 난제를 생각할 때 이명박 정부 5년은 우리나라가 선진 사회로 진입할 수 있을지를 가름할 중대한 시기가 될 듯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60년 사이 우리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을 정도의 산업화와, 평화적 정권교체가 계속될 수 있을 정도의 민주화를 이뤄냈다. 그러나 국토는 여전히 분단된 상태이고, 정당정치는 뿌리내리지 못했으며, 사회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후발국을 따돌릴 만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해 부심하고 있다. 아무런 안전판도 없이 경쟁 현장에 맨몸으로 내몰린 서민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져 공동체의 연대감은 급속도로 와해돼 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고 선진 사회로 도약하려면 사회 전반의 민주화를 심화시키고 건실한 경제발전과 복지 확충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며 남북관계 및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동북아의 평화체제를 구축해 내는 일이 긴요하다. 선진화의 갈림길에 선 정부 이명박 정부는 이를 위해 활기찬 시장경제, 인재대국, 글로벌 코리아, 능동적 복지, 섬기는 정부라는 5대 국정과제를 채택했다. 지난 5년간 갈등의 정치에 지친 국민들은 ‘섬기는 정부’라는 새 정부의 국정과제가 단순한 수사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국민을 섬긴다는 것은 국민을 편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정치적 합의를 무시하는 불도저식 국정운영은 국민을 불편하게 만든다. 500만표 이상의 표차로 당선됐음에도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시 지지율이 50%대로 곤두박질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정권인수 기간에 보인, 합의의 정치를 무시하는 일방통행식 행태였음을 유념해야 한다. 국민의 마음을 다시 얻으려면 그동안의 난맥상을 되돌아보고 겸손한 자세로 새출발하는 게 필요하다. 국민을 제대로 섬기려면 그들의 삶을 옥죄는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도시근로자 가계지출 가운데 주거비와 교육비의 비율은 30%를 웃돌 정도로 심각하다. 그래서 집값 안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 부동산 정책이 후퇴할 것이란 전망이 짙게 깔려 있다. 부동산 시장에 드리워진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분명한 정책 방향과 확고한 정책 의지를 빨리 밝혀야 한다. 성장과 그를 통한 일자리 창출은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 경제를 둘러싼 안팎의 여건은 좋지 않다. 세계적 경기침체 가능성이 상존하고 물가 불안은 깊어지고 있다. 경제안정을 도모하는 게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성장에 매몰됐다가 안정을 잃어 후유증을 겪었던 나라 안팎의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육은 민생 최대의 관심사이자 미래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적 요소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잘못된 문제의식에서 잘못된 해법을 추구하고 있다는 우려가 많다. 한국 교육문제의 근원인 획일성은 그대로 둔 채 경쟁이라는 시장주의 원칙만 적용하겠다는 발상이 혼란과 파행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은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열어줘 사회 통합을 이루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여기에 시장의 원칙을 적용할 경우 경제적 배경에 따른 교육력의 격차를 피할 수 없고, 교육력의 격차는 계층 고착화와 사회적 양극화로 이어져 사회적 갈등과 불안을 가중시키고, 결국 국가 발전을 막게 된다.시장에 대한 맹신은 위험 성장 우선 정책에 압도된 환경정책도 암울하긴 마찬가지다. 한반도 대운하는 상징적이다. 환경 재앙을 초래할 것이란 경고나, 경제성도 기대할 게 없다는 전문가들의 경고와 지적엔 아예 귀를 막고 있다. 농지조성용이라고 강변하며 물막이를 강행했던 새만금 간척지엔 산업시설을 짓겠다고 간단히 말을 뒤집었다. 환경보호를 위한 각종 규제도 대부분 풀어버릴 태세다. 이런 정책은 효율과 시장에 대한 새 정부의 과도한 믿음에서 비롯한다. 그럼나 기업 경영과 달리 국정 운영에선 시장주의와 효율이 전부가 될 수 없다. 시장주의와 효율에 과도하게 기울 경우, 비정규직 문제나 소외계층 배려 등 복지 차원의 과제를 풀어낼 수 없다. 새 정부는 지난 수년간 소득 불평등 지수가 계속 악화돼, 상·하위 소득격차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가장 큰 쪽에 속할 정도로 심각해진 양극화 문제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 복지정책에서도 국가의 역할을 줄이는 대신 시장과 경쟁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노동문제의 경우엔 정책이 있기나 한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 이래 비정규직 문제 등 노동현안에 대해 입을 닫는 것은 물론 민주노총과의 대화조차 거부했다. 이래 가지고서는 국민의 아픈 곳을 어루만지는 섬기는 정부가 될 수 없다. 양극화 극복 방안 마련해야 한반도 주변 환경은 극히 유동적이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은 지연되고 있고, 미국의 부시 정권은 레임덕 상황에 빠져 있다. 여기서 한국마저 핵문제 해결에 손을 놓을 경우,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남을 우려가 높다. 한반도 비핵화가 우리의 목표라면, 남북 정상의 합의를 이행해 나가면서 한국이 주도적 구실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놓아야 한다. 한-미 동맹 강화라는 정책 방향은 탓할 것 없지만, 그것이 냉전시대식 한-미 동맹 복원과 강압적 대북정책으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한-미 동맹과 남북 공조 그리고 동북아 협력이 함께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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