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2.29 19:51
수정 : 2008.02.29 19:51
사설
이명박 대통령 취임 뒤 첫 일주일을 보낸 지금, 그를 지지한 이들이나 반대한 이 모두 편한 심정이 아닐 게다. 안타까움과 허탈, 답답함 따위로 새 정부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은 잇따른 인사 난맥상 때문이다.
요 며칠 사이의 일도 그렇다. 이 대통령은 그제 경남 남해 출신으로 고려대 후배인 김성호 전 법무장관을 국가정보원장 후보로 내정했다. 이로써 법무장관, 청와대 민정수석, 검찰총장, 경찰청장 등 사정·권력기관의 책임자 다섯이 모두 영남 출신으로 채워졌다. 청와대 쪽은 “국정원장은 지역 안배보다 대통령과 뜻이 맞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자리에 영남 출신을 기용한 것도 같은 이유였을 게다.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국정원 등 사정·권력기관을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기구 정도로 생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에선 국정원의 정치 중립, 검찰·경찰 독립 등 우리 사회가 지향해 온 가치들은 찾을 수 없다.
‘영남 향우회’라는 비판도 비아냥으로만 들을 일이 아니다. 권력을 행사할 때 판단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무리가 따르게 된다. 고향·학교·출신 등이 같아 자주 어울리다 보면 다른 생각을 돌아보기보다 비슷한 생각만 서로 부추기기 십상이다. 견제와 균형은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이런저런 연에 따른 봐주기 따위만 횡행한다. 비리나 부패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국민 통합은커녕 정권의 추진력만 약화된다. 역대 정부가 인사 안배에 신경을 썼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고 봐야 한다. 이를 무시하는 게 실용일 순 없다.
더 걱정스런 것은 이 대통령이 이런 비판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다. 김 전 장관의 국정원장 기용에 대해선 일찍부터 정부 안팎의 많은 이들이 반대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이를 밀어붙였다.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해치게 된다는 등 반대론이 무성한데도, 최측근인 최시중 전 한국갤럽 회장을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내정해두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든 내 맘대로 하겠다는 식으로 비친다. 뜻과 힘을 모으는 게 아니라, 내치는 모양새다.
어제 이 대통령은 인사 파문에 대해 “우리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일말’이란 말뜻대로 자신에겐 ‘그냥 한 번 스쳐가는 정도’의 책임만 있다고 생각해 남 탓을 하려는 것이라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뭘 잘못했는지 제대로 모르는 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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