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2.29 19:56
수정 : 2008.02.29 19:56
사설
삼성중공업이 태안 대책을 들고 자수했다.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와 관련해 국민적 수배를 당한 지 80여일 만이다. 그동안 삼성중공업은 법적 절차와 법원 판단에 따르겠다며 뒤로 숨었다. 연인원 5만여명의 직원이 태안 현지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도 회사 이름조차 숨겼다.
그러나 대책 내용이 참으로 초라하다. 1천억원의 지역 발전기금을 출연한다는 게 고작이다. 이미 수천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든 규모다. 게다가 당장 생계가 막연한 주민들에게는 그림의 떡과도 같은, 간접 방식으로 지원된다. 주민들이 냉담하다 못해 오히려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앞으로 생태계 복원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피해지역과의 자매결연, 소외계층 후원 계획도 포함돼 있지만, 싸구려 말잔치로만 들린다.
김징완 사장은 이 자리에서 ‘우리의 경영능력 등을 고려할 때 이것이 우리가 마련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금액’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제 할 만큼 했으니 맘대로 하라는 뜻으로 읽힌다. 2만여 가구의 삶터를 유린한 기업의 대표가 한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그는 또 “그동안 조속한 피해대책에 대한 주민 요구와 주주 가치를 지키는 문제 사이에서 고민했다”고 덧붙였다. 가해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피해배상을, 하지 않아도 되거나,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듯 비친다. 문제를 풀자는 것인지 꼬자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태안의 재앙은 이 회사 크레인 예인선이 정박해 있는 유조선을 들이받아 일어났다. 그럼에도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법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 같다. 이미 검찰은 삼성중공업에 중과실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최근 제정한 ‘태안 지원 특별법’ 역시 배상 대상 선박을 유조선에 국한시켰다. 무한책임을 지우려면 법원이 삼성의 중과실을 인정해야 하는데, 검찰과 정치권을 끌어들인 상황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할 법하다. 해상사고 관련 법규엔 선주 면책 조항이나, 책임 제한 조항 따위도 있다. 여수 앞바다 시프린스호 사고 때 사고 업체는 수백억원의 지역 발전기금을 내고 때운 선례도 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해양오염 사고에 대해선 피해 보상비, 환경 복구비 외에 징벌적 배상금까지 선고되는 게 관례화되고 있음을 삼성은 알아야 한다. 얄팍한 계산에 기대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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