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18 18:09
수정 : 2005.04.18 18:09
어린이 성폭행범 출소뒤
평생 위치추적 법안 논란
“성범죄자에게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는 위치추적 장치를!”
미국에서 어린이 성범죄자들에게 위성위치추적시스템(GPS) 장치를 달아 당국이 평생 이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제출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플로리다주 상원의원 낸시 아르젠지아노(공화당)는 최근 12살 미만 어린이를 성폭행한 범죄자는 종신형을 살도록 하거나 일정 기간 복역한 뒤 평생 위치추적 장치를 달고 살도록 규정한 법안을 플로리다 주의회에 제출했다. 비슷한 내용의 연방법안도 연방 의회에 제출됐다.
“짐승 활보 막아야” “비용과다 인권침해”
호주선 성범죄자 야간통금·직업제한 추진
이런 초강력 법안이 제출된 것은 최근 플로리다주에서 2명의 여자 어린이가 잇따라 성범죄 전과자에게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9살의 제시카 런스퍼드는 지난 2월24일 집에서 조부모와 함께 잠을 자던 중 납치됐다가 23일 만에 집에서 100여m 떨어진 숲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범행을 인정한 존 쿠이(46)는 문이 열려 있던 이 집에 침입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이 전국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쿠이가 숱한 성범죄와 강도 등의 전과로 24차례나 체포된 적이 있는데다, 성범죄 전과자에게 정기적으로 자신의 주거지를 당국에 신고하도록 한 현행법이 사실상 무용지물이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플로리다주를 비롯해 미국의 여러 주는 성범죄 전과자가 주거지를 옮길 때마다 당국에 알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주거신고 법안 무용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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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 잇따른 어린이 성폭행 사건으로 성범죄자들에게 평생 위치추적 장치를 부착하는 법안이 제출돼 논란이 있고 있다. 사진은 지구 밖 궤도를 돌고 있는 위성위치추적시스템(GPS)의 위성.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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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가 실종되자마자 플로리다주에 살고 있는 성범죄 전과자를 먼저 수사하기 시작한 당국은 쿠이가 등록된 주거지에 살고 있지 않고, 이미 다른 주로 도망한 것을 발견했다. 전과자가 자신의 주거지를 거짓으로 신고하거나 신고를 게을리 하더라도 당국이 바로 알 수 없는 ‘맹점’이 드러난 것이다.
같은 플로리다주에 사는 13살짜리 사라 미셸도 지난 9일 또다른 성폭력 전과자에게 살해된 뒤 17일 인근 연못에서 발견되면서 이 규정은 더욱 거센 여론의 반발을 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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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성폭행 더는 못 참는다”=희생된 아이의 이름을 따 ‘제시카 런스퍼드 법안’을 제출한 낸시 아르젠지아노 의원 등은 “누구라도 어린이를 성적 먹잇감으로 생각하는 범죄자에게 납치되는 공포를 가지고 살아서는 안 된다”며 “위치추적 장치가 있었다면 사건 발생 당시 그가 어디 있었는지를 알고 바로 잡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직 미연방수사국(FBI) 수사관인 클린트 반 잔드는 “미국에 대략 53만명의 성범죄 전과자가 있는데 이들 중 20%는 당국이 위치를 추적할 수 없는 상태”라며 “성범죄자들이 보통 수차례 또는 수백번 범죄를 저지른 뒤에 당국에 잡히기 때문에 1번 또는 2번 전과가 생겼을 때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시카의 할머니인 루스 런스퍼드는 “제시카는 갔지만 우리가 더는 이런 범죄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며 법안을 지지했다. 제시카가 살던 호모사사 마을의 시민클럽 회원인 다이앤 토토는 “이런 짐승같은 사람이 거리를 활보하는 것도 모자라 조부모와 함께 자고 있던 아이를 침대에서 납치한다면 도대체 다른 아이들의 안전도 어떻게 보장될 수 있단 말인가”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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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을 모두 채운 뒤 위치추적은 인권침해”=이 법안에 대한 비판자들은 첫번째로 비용 문제를 제기한다. 이미 위치추적시스템을 도입한 플로리다주의 일부 카운티들이 매년 800만달러를 쓰고 있기 때문에 주 전체가 이 시스템을 사용하게 되면 비용은 엄청나게 늘어난다. 미국 전체에서 비용이 얼마나 들지 정확한 계산이 나온 적은 없지만, 일부에서는 1억달러가 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인권 침해 요소도 지적되고 있다. 시민단체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구속, 가석방, 보호관찰 등의 대안으로 위치추적 장치가 사용될 수는 있지만, 선고된 형을 모두 마치고서도 평생 위치추적 장치를 다는 것은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지적한다.
한편, 일반 범죄자와 달리 성범죄자를 더 세게 처벌하는 규정을 둘러싼 이런 찬반 양론은 미국에서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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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행에 희생된 제시카 룬스퍼드(왼쪽 사진)의 추도식이 지난 3월26일 제시카가 살던 호모사사의 한 교회에서 열려 목사가 1000여명의 참석자를 상대로 추도식을 주재하고 있다. 호모사사/로이터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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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비용 1억달러 이를 것”
1996년 미국 대부분의 주에선 거주자들이 자신의 집 주변에 성범죄자가 거주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메간법’이 통과됐다. 이 메간법은 1994년 뉴저지에서 메간 니콜 칸카라는 당시 7살짜리 어린이가 이웃집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메간법이 처음 통과됐을 때는 주민들이 직접 관할 경찰서를 찾아가거나 전화를 통해서 성범죄자의 신상 정보를 알 수 있었지만,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점차 주 당국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자세히 공개하는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시민단체들은 인터넷 공개는 ‘범죄자에 대한 지나친 인권 침해’라며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상태다.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주에서도 최근 어린이 성범죄자들를 평생 감시하는 법안이 주 의회에 제출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빅토리아 주정부는 성범죄자들이 감옥에서 석방되는 즉시 전자 꼬리표를 달아 위치를 추적할 뿐만 아니라, 야간 통행을 금지시키고 직업선택의 자유까지 제한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강김아리 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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