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05 19:52
수정 : 2008.03.05 21:58
사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그제 삼성특검 사무실에 조사를 받으러 드나들 때, 몇몇 중앙일보 기자들이 보여준 모습은 언론 종사자들에게 깊은 자괴감을 안겨줬다. 홍 회장이 건물로 들어설 무렵 한 해고 노동자가 손팻말을 들고 나타나자 조인스 영상취재팀 기자는 그를 카메라로 밀어붙였고, 홍 회장이 귀가할 때는 중앙일보 기자 4~5명이 취재 중이던 다른 회사 기자들을 가로막고 몸싸움을 벌였다. 그들은 취재기자가 아니라 마치 경호원처럼 행동했다.
현장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취재기자가 수사기관에 출두하는 사주의 방패막이 노릇을 하는 것은 기자의 본분을 망각한 행위다. 게다가 다른 언론의 정당한 취재를 방해하기까지 한 것은 언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한 꼴이다. 오죽했으면 삼성특검 영상취재기자단이 “홍 회장이 차에 오르는 모습을 취재하려 했던 기자들이 중앙일보 기자들에게 끌려나가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해당 기자들의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겠는가.
중앙일보 기자들은 홍 회장이 수사기관에 출석할 때마다 이런 모습을 반복해 왔다. 2005년 이른바 ‘엑스파일 사건’ 때는 검찰에 출두하는 홍 회장 앞으로 구호를 외치며 나선 민주노동당원을 중앙일보 사진기자가 낚아채 물의를 빚었다. 앞서 1999년 보광그룹 탈세사건으로 당시 홍 사장이 조사를 받으러 나올 때는 중앙일보 기자 40여명이 줄지어 서서 “사장 힘내세요”라고 큰소리로 외쳐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홍 회장이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같은 일이 계속 되풀이되는 것을 보면, 최소한 묵시적 동의는 한 것으로 여겨진다. 언론을 사회의 공기가 아니라 사유물로 생각하고, 소속 언론인을 자신을 위해 동원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이라면 과연 언론사 경영자로서 자격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쉼없이 추락하고 있다. 남을 탓할 일이 아니다. 돈벌이에만 눈이 먼 언론사주, 소속 회사의 회사원에 불과한 듯 행동하는 기자에게 누가 믿음을 가질 것인가. 어제까지 청와대를 출입하던 기자가 오늘 정부 부처 고위직으로 자리를 옮기고, 정치 기사나 칼럼을 쓰던 이가 하루아침에 국회의원 후보 공천을 신청하는 게 우리 언론 현실이다. 언론계의 자정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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