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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11 20:13 수정 : 2008.03.11 20:13

사설

경제학 교수 80명이 어제 ‘서울대 경제학부의 학문 다양성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년퇴임한 마르크스 경제학자 김수행 교수의 후임에 이 분야 전공자를 임용하라는 내용이다. 서울대 경제학부 대학원생들의 대자보로 촉발돼 사회·정치·언론·여성학 대학원생들의 성명과 학부생의 서명운동으로 확산된 것을 교수 사회가 이어받은 것이다.

서울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경제학부 교수 33명 가운데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는 김 교수뿐이었다. 그럼에도 단 한 명의 비판 경제학자가 발붙이는 것도 막기 위해 차일피일 결정을 미뤄왔던 것이다.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인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마저 “마르크스 경제학자 한 명을 용인하지 못할 정도로 서울대 경제학부가 옹졸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대는 20년 전 김수행 교수를 임용할 때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옹졸했다. 당시 학부생 및 대학원생들의 거센 요구에 떠밀려 서울대는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를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주류 경제학에선 마르크스 경제학이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효용성을 잃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르크스 경제학은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경제학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운동 법칙과 내재적 모순을 규명하는, 자본주의에 관한 경제학이다. 때문에 주류 경제학이 규명하지 못한 주기적인 공황의 이유, 자본가와 노동자의 갈등으로 말미암은 충격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규명했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와 함께 빈부격차와 양극화가 심화되고, 지구적 차원의 금융위기 가능성이 더 높아진 지금 그 필요성은 더 커졌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문의 다양성이다. 학문이 시대의 흐름을 따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학문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전제 조건은 다양성이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에 따라 학교에서마저 주류 경제학만 가르친다면, 그 모순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할 여지가 사라지고 그만큼 사회는 허약해진다. 종다양성이 파괴되면 환경재앙에 쉽게 노출되는 생태계나 마찬가지다.

서울대는, 문제는 많지만 여전히 한국 고등교육의 상징적 존재다. 이런 대학에서 특정 학문만 편식해 입신출세자만 양성한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오히려 학문의 다양성, 치열한 비판정신을 고취해 학문의 백화제방을 이뤄,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모범이 돼야 한다. 14일 교수회의를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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