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13 20:35
수정 : 2008.03.13 20:35
사설
공영방송이 그나마 정권의 나팔수란 오명에서 벗어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방송 정책을 결정하고 공영방송 경영진을 인선하고 감독하는 기구에 야당 인사가 참여하고, 방송사가 나름대로 자정 능력을 키우는 등 민주적 역량이 쌓인 결과다. 5년 전 <한국방송> 사장으로 내정됐다가 탈락한 서동구씨의 사례는 상징적이다. 당시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은 대통령의 언론고문을 지낸 사람이 되면 방송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기대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지금 공영방송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대통령의 방패막이를 자처한 이가 방송통신위원장에 내정되고, 임기제 한국방송 사장에 대한 퇴진압력이 노골화하고 있다. 정권이야 그렇다 해도, 족벌언론도 언론인데, 그 태도는 상식 밖이다. 아예 정권의 손발처럼 움직이며, 정권의 방송 장악을 지원한다. 최씨 임명을 강행할 명분이 없어지자, 이들은 최씨 인사 검증을 좌파의 총공세라며 색깔론을 들고 나왔다. 그러자 집권당 원내대표는 좌파정권 기관장 사퇴론을 제기했다. 손발이 척척 들어맞는다.
최씨의 부적격 사유는 너무나 많다. 이 대통령과의 관계를 떠나 1997년 대선 때 불법적으로 여론조사 정보를 유출하고, 5공 때는 동아일보 정치부장으로서 각종 권언유착 행태를 보였다. 굳이 부동산투기 의혹 등 도덕성 문제를 거론할 필요도 없다. 한국언론학회,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정보학회 등 세 학술단체장이 “최시중 방통위원장 후보자로는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힌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일반 국민이나 전문가를 상대로 한 복수의 여론조사에서도 열에 일곱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태가 이렇게 꼬이면서 불똥은 한국방송 사장 퇴진 문제로 옮겨갔다. 비교적 손쉬운 고리라고 여긴 듯했다. 그러나 임기가 보장된 방송사 사장에게 정치권력이 퇴진을 압박하는 것은 최악의 언론탄압이다. 그에게 정치적 혹은 경영상의 문제가 있다면, 이사회나 방송통신위원회가 논의할 일이다. 이런 염치없는 짓에 족벌언론이 앞장서는 이유는 간단해 보인다. 이 정부는 공중파 방송의 민영화와 신문·방송 겸영을 약속해 왔다. 족벌언론이 십수년 노려 온 먹잇감이다. 좋은 먹이를 하사받으려는 충성 경쟁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총선을 앞두고 방송 장악이 절실한 정권으로서야 가끔 다그치며, 보고 즐기면 된다. 참으로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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