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13 20:37
수정 : 2008.03.13 20:37
사설
삼성 특검이 어제 특검의 수사 대상 중 하나인 ‘이(e)삼성 사건’의 이재용씨 등 피고발인 28명 모두에 대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리했다.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이 사건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씨가 이삼성 등 인터넷 회사들을 운영하다 200억원 이상의 큰 적자를 내자 삼성 계열사 9곳에서 이씨 등의 지분을 비싸게 사들여 손실을 벌충해 주고 회사엔 손해를 끼쳤다는 의혹을 받은 사건이다. 법적으로는 지분매입 결정이 각 회사의 순수한 경영판단인지가 핵심이다.
특검은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을 했다. 특검은 이삼성의 설립과 운영은 물론, 문제된 삼성 계열사의 지분 인수 결정이 모두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지시와 주도에 따른 것이었다고 밝혔다. 구조본의 관여를 부인해온 삼성의 지금껏 주장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특검은 그럼에도 계열사들이 적정한 주식가치 평가와 정상적 의사결정 절차를 거쳤으니 지분 매입이 잘못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부당한 명령은 있었지만 절차를 거쳤으니 괜찮다는, 영락없는 형식론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삼성 구조본은 회장 직할로, 삼성 안에서 누구도 그 지시는 거역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 계열사들이 투자 적정성 판단을 한다고 해서 독자적 결정을 할 수는 없는 구조다. 인수 뒤 곧 투자원금의 60% 이상을 날리는 어처구니없는 의사 결정을 9개 회사가 함께 했다는 게 정상이라고 우길 수도 없을 게다. 지분 인수에 적용된 주식가치 평가방법에 대해서도, 다른 적정한 기준이 있는데 유독 이씨에게 유리한 방법을 적용했다는 지적이 많다. 특검이 삼성에 면죄부를 주기로 작심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다.
수사가 제대로 됐는지도 의문이다. 핵심 당사자인 이재용씨는 한나절 조사를 받았을 뿐이고, 피고발인 28명 가운데 17명은 아예 소환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수사 결과를 그대로 믿긴 어렵다.
더 큰 걱정은 이번 결론이 특검의 수사결과 전체를 예고하는 게 아니냐는 데 있다. 경영권 승계 의혹과 비자금 조성 및 불법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이번처럼 제대로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거나, 실체엔 눈 감은 채 법적 형식론으로 도피하려 한다면 우리 사법체계 전체가 불신을 받게 된다. 공 못지않게 과도 많은 삼성의 전횡을 바로잡을 기회도 영영 놓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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