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14 20:37
수정 : 2008.03.14 20:37
사설
태안 기름유출 사고 100일째다. 태안 해안국립공원의 해안은 겉보기에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은 듯하다. 백사장은 눈부시게 빛나고, 바다는 짙푸른 물결을 뽐낸다. 기적 운운할 만하다.
그러나 가까이 가 보면 안다. 개펄이나 백사장엔 빈 고둥껍데기와 죽은 성게, 갯가재가 널브러져 있다. 가장 흔하던 모래옆새우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널려 있던 흑비단 고둥, 똘장게 따위도 보이지 않는다. 모래를 조금만 파면 역겨운 기름냄새가 진동한다. 접근하기 힘든 갯바위 암벽이나,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외딴섬 해안가는 기름찌꺼기가 그대로다.
엊그제 환경부가 발표한 긴급조사 결과는 이를 잘 뒷받침한다. 해조류와 해초류는 사고 이전의 절반에 불과했다. 물이 드나드는 조간대 갑각류는 사고 이전 133개체/㎡에서 56개체/㎡로 줄었다. 홍합의 기름오염 농도는 5~10배 높았다. 결론은 ‘생태계 전반적 붕괴’였다. 바닷말이 없으니 조개·고둥붙이가 사라지고, 먹이가 없으니 갈매기조차 사라졌다고 한다.
삶터가 이렇게 황폐해졌으니, 사람들 삶이야 오죽할까. 기름이 덮쳤던 통개에서 가로림만까지 36㎞의 연안은 여전히 조업이 중단된 상태고, 500여척의 고기잡이 배는 하릴없이 놀고 있다. 수많은 횟집과 펜션 등은 폐업 상태다. 태안의 지역경제는 실종됐다. 쥐꼬리만한 정부 지원금은 이웃간의 갈등과 다툼만 유발해 공동체의 유대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절망감이다. 국제 유류오염 보상기금이 추정한 피해액은 최대 4240억원에 불과하다. 국내 전문가 추정치의 15~20%에 불과하다. 최대치를 받는다 해도 방제비 등을 빼면, 가구당 280만원에서 310만원밖에 돌아가지 않는다. 이미 석 달을 공쳤고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데,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생태계 원상 회복엔 20년이 걸린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주민들의 몸과 마음은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주민의 희망을 살리는 일이다. 그건 가해자의 중과실을 규명하고, 무한책임을 묻는 데서 출발한다. 수사기관은 삼성중공업에 면죄부만 줬다. 피해자는 무수한데, 가해자는 없다. 삼성중공업의 중과실은 삼척동자도 안다. 시민사회는 엊그제 재수사를 요구하는 고소·고발장을 냈다. 이제 절망을 씻어낼 책임은 이명박 정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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