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18 19:50
수정 : 2008.03.18 19:50
사설
한나라당의 4·9 총선 공약 목록에서 ‘한반도 대운하’가 지워졌다. “대운하에 대해선 오해를 빚거나 불완전한 부분이 있다. 잘 다듬어 국민을 설득하는 게 더 중요하다”(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는 게 그 이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운하 추진을 4월 총선공약으로 내걸어 국민 심판을 받은 뒤 늦어도 내년 초엔 착공하겠다고 강조해 왔던 게 현정부와 여당이다. 이명박 대통령 핵심 측근인 이재오 의원은 지난 1월 <한겨레> 인터뷰에서 “운하로 국운을 융성하게 하겠다는 게 당선인(이명박 대통령)의 굳은 의지인 만큼 총선에서 총체적으로 국민 동의를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당이 선거에서 국민 지지를 많이 받을 수 있는 공약을 내놓고, 지지가 없는 정책들을 수정하거나 폐기하는 건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특히 정부·여당은 새로운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힘을 얻거나, 때론 잘못된 정책 방향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 대운하 공약을 놓고 한나라당이 취하는 행동은 치졸하기 짝이 없다.
‘운하 전도사’를 자처하는 이재오 의원은 ‘대운하 반대’를 내걸고 서울 은평을에서 그에게 도전한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에게 예상 밖으로 고전하고 있다. 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무소속으로 나선 박근혜계 의원들은 모두 ‘대운하 반대’를 한나라당과 차별성을 드러내는 핵심 사안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이 국민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한나라당은 대운하 건설을 총선 공약에서 뺐지만, 이 공약을 포기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민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좀더 수렴해서’ 추진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표를 위해서라면 국민을 잠시 속이는 것도 괜찮다는 발상인 것 같아 씁쓸하다. 대운하 공약을 뒤로 숨겨 총선에서 표를 얻은 뒤 다시 추진해도 국민이 묵인해줄 거라 생각한다면 이는 국민을 우습게 보는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를 놓고는 지난해부터 숱한 논란과 비판이 제기됐다. 지금 국민의 냉담한 반응은, 이 정책에 대한 나름의 평가를 내렸음을 뜻한다. 한나라당은 국민 지지를 끌어낼 자신이 없다면, 이번 기회에 깨끗이 ‘대운하 건설’을 포기하겠다고 밝히는 게 정도다. 국토 전체를 헤집을 중요한 정책을 가지고 꼼수를 부려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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