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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18 19:50 수정 : 2008.03.18 19:50

사설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정치권력의 ‘망나니’ 노릇을 하고 있다. 그가 휘두른 칼날에 임기제 기관장이 잇따라 사의를 밝혔다. 새 정부에 신임을 묻기 위한 것이라지만, 한편으론 공갈·협박이 지겹고, 또 새 정부의 치사한 행태를 더는 보기 싫어 그랬을 것이다. 유 장관은 흡족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바로 그 칼부림에 우리 문화가 죽어나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양성과 관용은 문화의 생명이다. 문화는 자유 속에서 꽃을 피우고,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정신 속에서 열매를 맺는다. 그런데 유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철학과 이념이 다른 사람은 나가라고 윽박질렀다. 자신과 같은, 혹은 현정부의 입맛에 맞는 사람에게 문화예술계 기관장을 맡기겠다고 한다. 문화계를 단일한 색깔과 사고로 획일화하겠다는 발상이다. 군대문화도 문화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이래서야 어찌 문화가 발전할까.

게다가 그는 정치권력의 시녀 구실을 자임했다. 여당 원내대표가 이전 정부가 임명한 사람은 사퇴하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유 장관은 문화예술계 기관장을 겨냥해 이를 복창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권은 바뀌었지만 야당 하는 것 같다’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는 ‘그래도 물러나지 않으면 재임 중의 문제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협박, 공갈이다. 나름대로 소신껏 예술 발전을 위해 살아 왔다고 자부하는 이들을 파렴치범으로 내모는 발언이다. 그의 뜻대로 된다면, 몇 푼 지원금 대신 예술가의 양심을 팔아, 정권의 시녀 구실이나 했던 군사정권 시절로 문화계의 중심은 이동할 것이다.

그는 또 민주적 원칙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그에게, 법이 정한 임기제 기관장의 임면 절차는 무의미했다. 한나라당이 야당 시절 주도적으로 추진한 것인데도 말이다. 잘못이 있으면 문책당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절차에 따라야 한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식이어선 안 된다. 서울문화재단 대표가 될 때 낙하산 인사의 전형을 창조했던 것처럼, 독재적 인사가 그의 소신인지 모르겠다. 독재체제에서 가장 먼저 질식하는 건 문화예술이다. 우리의 문화예술은 길고 긴 독재체제 속에서 발육부진을 면치 못했다.

문화부 장관으로서 그의 소양은 이미 밑바닥을 드러냈다. 그러나 아무리 소양이 부족해도, 일국의 문화부 장관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는 지켜야 한다. 정치권력의 망나니가 되어 문화를 죽이는 짓은 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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