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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청산, 법부터 제대로 만들어야 |
여야가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한 과거청산법안이 합의 과정에서 크게 변질돼 시민단체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문제의 조항은 진실규명 대상 가운데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에 대해서는 법상 재심사유에 해당해야 조사할 수 있도록 한 대목이다. 시민단체들은 이대로라면 과거청산은 불가능하다며 “법을 빙자한 또 한번의 과거 은폐”라고 비판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은 재심청구 사유로 “원 판결이 확정한 죄보다 가벼운 죄를 확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로 규정하고 있다. 과거사법은 진실규명을 통해 이 증거를 찾자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법에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돼야 하는 재심사유 조항을 전제로 규정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기존의 자료밖에 없는 상태에서 법상 재심사유에 해당하는 지위를 확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는 확정판결이 난 사건은 아예 조사하지 못하게 하는 독소조항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는 법적 안정성을 고려한 조항이며,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판단으로 얼마든지 조사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매우 자의적이고 무책임하다. 피조사자 쪽에서 법 규정을 들어 소송을 걸 경우 새 증거가 없는 한 조사는 불가능해진다. 또 극히 일부의 의혹사건에 대해 합법절차로 조사하는 것을 두고 법적 안정성을 해친다고 볼 수는 없다. 법적 수단을 동원해 자행한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는 것은 오히려 법적 안정성을 높이는 일이다.
이 법안은 애초 논의됐던 예금 조회권, 통신사실 조회권 등 위원회의 조사권한을 크게 축소했다. 반면에 조사 내용을 공개하면 중벌로 처벌하는 등 조사 대상자는 과도하게 보호하고 있다. 이 위에 조사 대상 선정까지 제약한다면 그야말로 유명무실한 법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진실을 규명해 시대의 아픔을 치유한다는 본래의 목표를 제대로 실현하려면 법부터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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