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25 20:06
수정 : 2008.03.25 20:06
사설
‘형님 공천’에 대한 당 안팎의 반발과 잇따른 용퇴 건의에도 이상득 국회부의장이 어제 지역구인 경북 포항남·울릉에서 후보 등록을 마쳤다. 여권의 여러 중진 의원과 출마자 55명의 공개적인 요구를 다 물리쳤다. 그들의 요구가 권력투쟁 때문인지 아니면 충정의 발로인지는 나중에 드러나겠지만, 이번 사태는 ‘형님’의 힘만은 확실하게 보여줬다.
지난 며칠 이 부의장은 한 나라의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이름 석 자로 불렀다. “시중에 상왕 정치라는 얘기가 있다”는 기자들의 물음에 “이명박이가 내 말 들을 것 같냐. 당신들이 이명박이를 잘 몰라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때로는 “명박이가 …”라고도 했다. 자신과 동생이 독립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려고 한 말이겠지만, ‘대통령도 어쩌지 못하는’ 형님의 위상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뿐 아니다. 자신의 퇴진을 요구한 ‘동료’ 출마자들에 대해서는 “우물우물 전화로 (이름이) 얹힌 놈”이라고 표현했다.
그러잖아도 ‘형님’의 위력은 여러 군데서 드러난 바 있다. 청와대의 기획조정비서관과 정무1비서관 등 핵심 두 자리는 그의 보좌관을 지낸 사람이 차지했으며, 국정원의 기조실장에는 과거 코오롱그룹 사장 시절 자신 밑에서 일했던 사람이 임명됐다. 이 나라의 주요 국정 정보나 비밀이 그에게 다 들어오게 돼 있다. 또 국회 본회의장에서 그가 이력서를 살펴본 사람이 실제로 주요 부처의 차관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정황이 이런데도 그의 퇴진과 국정 개입 중단을 요구한 55명의 성명서가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할 것인가.
이재오 의원 등이 한발 물러섬에 따라 ‘형님 퇴진’ 파문은 일단락됐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다. 대통령 위에 있는 실세라는 것이 확인됐으니 장차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부의장에게 몰릴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더구나 그를 견제할 만한 사람들은 ‘놈’으로 찍혀 힘을 잃었다. 물론 이 부의장은 실력자로서 정부나 당의 뒤에서 여러 갈등을 조정하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그런 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정권 실세의 막후 활동이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훨씬 더 많으며, 결국 정권에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은 역대 정권이 증명했다.
진정 동생이 대통령으로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형님’은 물러나서 조용히 있는 게 맞다. 결단은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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