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26 19:36
수정 : 2008.03.26 19:36
사설
어제 있었던 통일부 업무보고는 그간 꾸준히 진전돼 온 남북관계가 앞으로 정체 또는 퇴보할 것임을 예고한다. 통일정책의 연속성과 독자성이 크게 위축된데다 현실과 동떨어진 막연한 과제만 나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코드’에 맞춘 이런 정책기조는 남북 사이에 새로운 갈등을 부를 가능성이 적잖다.
새 통일정책은 우선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이뤄진 성과를 부정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남북관계에서 기본이 돼야 할 10·4 정상선언과 6·15 공동선언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것이 단적인 예다. 정상선언에서 합의한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 및 해주특구, 조선협력단지, 개성공단 2단계 개발, 철도·도로 개보수 등이 정책 과제에서 빠진 것은 물론, 총리회담과 경협공동위 등도 언제 열릴지 알 수 없게 됐다. 대신 이명박 대통령은 1991년 노태우 정권 때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를 유달리 강조했다. 통일정책의 연속성을 부인하고 남북관계 출발점을 10여년 전으로 되돌리겠다는 얘기다.
정부는 또한 통일정책을 북한 핵문제의 종속변수로 위치시켰다. “핵문제 진전 상황을 봐 가며 남북관계 발전의 속도와 폭, 추진방식을 조정하겠다”는 방침은 핵 문제가 마무리될 때까지 남북관계에 힘을 쏟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다. 남북관계의 상대적 독자성까지 제한함으로써 스스로 족쇄를 채운 셈이다. 정권교체 이후 사실상 중단 상태인 남북 당국간 대화를 어떻게 재개할지에 대한 고민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접근으로는 통일 기반과 대북 발언권을 강화하기는커녕 핵문제 등 한반도 현안에서 한국의 위상만 떨어뜨리기 쉽다.
정부는 그러면서도 나들섬 구상과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최우선적 해결 등 여건 조성과 남북의 정치적 결단이 필수인 사안들을 주요 정책으로 제시했다. 남북관계 수준이 높아져야 진지하게 논의될 수 있는 사안을 놓고, 중간 과정은 건너뛴 채 종착점만을 내세운 것이다. 상대 처지를 생각하지 않는 이런 태도가 비현실적임은 90년대 이전 발표된 많은 대북 제안이 거의 성사되지 않은 사실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입맛대로 뒤집어선 안 될 국가 대계가 바로 통일정책이다. 앞서 이 대통령의 통일부 폐지 시도에 대해 국민 다수가 반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는 과거로 역행하지 말고 정말 국민의 뜻에 맞는 통일정책이 뭔지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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