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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26 19:38 수정 : 2008.03.26 19:38

사설

청와대는 그제 소외계층 지원책의 하나로 국민연금 기금을 신용불량자 구제자금으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무엇보다 먼저 이번 정부 발표는 법을 무시한 행위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999년 수정된 국민연금법을 보면, 국민연금 기금의 운용계획에 대한 결정권은 국민연금기금 운용위원회에 있다. 청와대나 경제 부처가 그 사용처를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월권이며 가입자의 권한을 침해하는 행위다.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인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이런 사실을 몰랐는지, 아니면 알고도 묵과했는지 모르겠으나, 어느 경우라 하더라도 장관으로서의 자질을 묻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국민연금 기금을 가입자의 대출 담보로 제공하는 일 역시 위법적 요소를 내포한다. 국민연금법 제46조는 “가입자와 가입자였던 자에 대하여 기금 증식을 위한 대여사업”을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번 조처는, 기금 증식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기금을 잠식할 위험이 농후하다. 따라서 이 조항에 해당하는 대여사업으로 보기 어렵다.

또, 국민연금을 담보로 대출받은 이들이 대출금을 변제하지 못해 노후 연금 급여권을 상실하게 된다면, 연금 사각지대가 더욱 확대돼 고령화 사회에 치명적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지금도 600만명 정도가 연금에 가입하지 못한 채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나아가 각종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가입자가 너도나도 연금을 담보로 요구한다면 연금기금은 존립할 수 없게 된다. 재정고갈을 염려해 지난해 연금급여를 10%포인트 삭감했던 정부가 기금을 훼손할 정책을 발의하는 것도 자기모순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이번 정책으로 국민연금 제도의 근간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연금기금을 쌈짓돈처럼 쓰기 때문에 연금제도를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팽배해지면 제도는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 국민연금 기금은 사회적 연대기금으로, 납부하는 순간부터 납부한 자에겐 귀속권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이번 발표는 그 귀속권이 개인에게 있는 듯한 인식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국민연금의 기본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

신용불량자 문제는 신용회생 제도를 정비하고 소액대출 자금과 같은 공적자금을 확보해 풀어가는 게 정도다. 손쉽다는 이유로 연금기금에 손을 댄다면 국민연금 제도 파탄이라는 더 끔찍한 결과를 부를 수도 있다. 원점에서 재검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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