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27 19:34
수정 : 2008.03.27 23:01
사설
아무리 직업 외교관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통일정책 반성문’은 너무 심했다. “지난날 통일부가 국민의 소리를 경청하지 않고 눈높이를 맞추지 못함으로써 남북관계에 대한 국민의 걱정과 우려를 자아냈다”는 자의적인 평가도 문제지만, 장관의 품격을 떨어뜨렸다. 이런 말을 자격 미달로 낙마했던 남주홍씨가 했더라면 국민도 내용에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평소 자신의 주장이네’ 하면서 그러려니 했을 터이다.
그러나 김 장관이 누군가. 김대중 정부 때 외교안보수석으로서 햇볕정책을 조율한 공을 인정받아 2001년 주중 대사로 부임한 뒤 노무현 정부 말까지 장수할 정도로 두 정권에서 신임을 받았던 ‘햇볕정책 전도사’가 아니던가. 그런 사람이 자신이 앞장섰던 정책을 헐뜯고 “통일부가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도록 대통령의 애정 어린 지도편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과거 10년의 김하중과 이명박 정부의 김하중이 딴사람이 아닐진대 보기가 민망하다. 연일 대북 압박 발언을 하고 있는 유명환 외교부 장관의 모습도 이전 정권에서 하던 행보와 크게 다르다.
장관은 국정 운영을 보좌하는 만큼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영혼’ 없이 ‘대통령 코드’에만 맞춰 수시로 말을 바꾸는 철새 행보는 안 된다. 정부와 공직자에 대한 국민 신뢰만 떨어뜨릴 뿐이다. 이런 사람은 정부 인기가 떨어지면 돌아서서 또 침을 뱉을지 모른다. 관료 출신이면 오히려 충실한 직업정신으로 대통령에게 고언과 조언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하루라도 빨리 물러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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