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28 19:46
수정 : 2008.03.28 19:46
사설
한반도 대운하 문제를 바라보는 국민은 혼란스럽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와 여당이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여론 수렴을 통해” 공약을 재검토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을 흘리면서, 내부적으론 4월 총선 이후 밀어붙이려는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26일 발표한 총선 공약집에서 대운하에 관한 언급을 아예 빼 버렸다. 그러면서 “(공약집에서) 빠진다고 안 한다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한다는 것도 아니다”(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란 해괴한 설명을 내놓았다. 이쯤 되면 대운하 공약은 중국영화에 나오는, 죽지도 않고 그렇다고 산 것도 아닌 ‘강시’ 수준이다.
더 큰 책임은 청와대에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입을 맞춰 “시간을 갖고 여론과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결정하겠다”고 말한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장기 국가적 과제로 검토해야 한다는 데 변함이 없다. 그렇기에 ‘백지화’라든가 ‘원점에서 검토한다’는 건 적절치 않고, 잠시 선반 위에 얹어 놓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솔직한 말은 이해하기 쉽다. 말을 꼬아서 어렵게 하는 건, 속내를 숨기면서 듣는 사람을 현혹하려 하기 때문이다. 27일 공개된 국토해양부의 ‘한반도 대운하’ 관련 내부 보고서가 이를 보여준다. 이 보고서를 보면, 정부는 내년 4월 운하 착공을 위해 ‘한반도 대운하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특별법의 시한은 6월이다. 4월 총선에서 원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뒤 곧바로 특별법을 통과시켜 대운하를 추진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시간을 갖고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청와대 설명은, 선거일까지만 대운하 공약을 뒤로 감추겠다는 잔꾀로밖에 볼 수 없다. 보고서엔, 건설회사들에게 막대한 특혜가 돌아갈 것임을 짐작게 하는 대목도 있다. 청와대가 내세우는 ‘민간 주도’의 본색이 그렇다.
대운하 건설은 이명박 대통령 자신의 아이디어다. 대운하 건설에 가장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도 이 대통령이라고 여권 핵심인사들은 말한다. 그런데도 그는 대운하 건설을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말이 없다. 모호한 언사로 총선을 넘긴 다음 국민을 설득하는 게 가능하리라 여긴다면 큰 오산이다. 출범 한 달 만에 새정부 지지율이 급락한 건 믿음의 실종 탓이 크다. 이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깨끗하게 대운하 공약을 포기하겠다고 밝히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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